전쟁 장기화 땐 '복합 위기'…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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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조기 종전 시 韓성장률 2% 근접…고물가는 '지속'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조기에 종식되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정부 목표치인 2.0%에 근접할 전망이다. 반도체 중심의 견조한 수출 흐름이 중동전쟁에 따른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하기 때문이다.
15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존과 같은 1.9%로 전망했다. 앞서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종전 1.7%에서 1.9%로 0.2%포인트(p) 상향 조정했다. 중동 전쟁 이전에 공개된 정부의 전망치(2.0%)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이들 기관의 전망은 중동 갈등이 수주에서 1개월 내 안정된다는 전제로 제시됐다. 수출이 탄탄한 만큼 전쟁이 빨리 끝나면 한국 경제가 뚜렷한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중동 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 상승, 물동량 악화,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한 소비 위축 등이 있다"면서 "만약 종전 협상이 타결돼 중동 전쟁이 조기에 마무리된다면 이런 문제들은 바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출이 호조인 만큼 하반기(7~8월)에는 우리나라의 성장 추세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미 누적된 유가 충격 등으로 고물가 흐름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전쟁이 조기에 종전돼도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약 43% 높은 가격이다. 에너지 시설 등을 복구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고유가는 국내 물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한 생산자물가를 통한 비용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고, 이는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물가 전망치를 올려잡고 있다. IMF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기존보다 0.7%p 높인 2.5%로 제시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도 2.3%로 0.2%p 상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무려 0.9%p 올린 2.7%를 전망했다.
◇전쟁 장기화 땐 韓경제 '복합 위기'…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결렬되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는 단순한 성장 둔화를 넘어 물가·금융·실물 경제 전반이 동시에 압박받는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쟁 장기화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국제유가 상승이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5월 중순까지 이어지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했고,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해상 운송이 3개월간 중단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중동 해상 물류 리스크로 운임과 보험료까지 상승하면 실제 기업이 부담하는 에너지·물류 비용은 유가 상승폭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같은 비용 충격은 생산자물가를 통해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정유·석유화학뿐 아니라 운송, 항공 등 에너지 집약 업종을 중심으로 원가 부담이 급증하고, 기업들은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현재 2%대 초반 수준인 소비자물가를 3%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JP모건은 "중동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5∼9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돌 것"이라며 "그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충격이 누적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1% 초반까지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고물가 속 경기침체'가 굳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투자은행(IB) 나틱시스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 아시아 국가들이 중앙은행들이 도울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1.0%로 0.8%p 낮췄다.
박진 교수 역시 "전쟁이 길어지면 경기 침체와 함께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며 "1970년대 오일쇼크로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