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美 호르무즈 봉쇄에 아시아 ‘역대급 에너지 위기’ 현실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15010004897

글자크기

닫기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4. 15. 18:27

하루 1000만 배럴 시장서 이탈…브렌트유 100달러 선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세계 성장률 전망 3.0%→2.4%로 하향
방글라데시·파키스탄 "국제수지 위기" 경고…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clip20260415162539
호르무즈 해협 인근 페르시아만에서 화물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 지역과 접한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촬영됐으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해상 물류의 요충지 상황을 보여준다/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해상 봉쇄 선언으로 아시아가 생존 기억 속 가장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이란 종전 회담이 결렬되고 해협 재개방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 원유의 90%를 호르무즈에 의존하는 아시아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 해군은 지난 13일부터 호르무즈 해협 장악에 나섰다. 이란은 즉각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의 어떤 항구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국 군과 혁명수비대(IRGC)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약 4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 물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아시아에는 더 치명적인데, 역내 원유의 약 90%가 이 해협을 지나며 중국·인도·일본·한국 4개국이 그 물량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공급 경색은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ANZ은행에 따르면 이번 분쟁으로 1월 대비 하루 1000만 배럴의 원유가 시장에서 이탈했고,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14만 7720 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에너지의 자니브 샤 부사장은 대체 원유를 찾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캐나다·중남미 등 대서양 연안 산유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만 "원유 유종 교체는 간단하지 않아 정유 제품 공급에 추가 압박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구매국은 높아진 비용을 흡수해야 하고, 일부는 "아예 시장에서 밀려나 수요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천연가스 위기도 겹치고 있다. 피치솔루션스에 따르면 카타르산 LNG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대만·싱가포르는 분쟁으로 걸프 지역 생산시설이 파손되면서 공급 차질을 겪고 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벤 메이 글로벌 거시연구 디렉터는 호르무즈 해협이 4월 말까지 사실상 폐쇄 상태를 유지하고, 5~6월에 정상 물동량의 약 50% 수준으로 회복한 뒤 점차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는 지난주 발표된 휴전이 유지될 경우에 한정된다. 그는 "휴전이 유지되더라도 에너지 생산과 해운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연초 3.0%에서 2.4%로 하향했고, 2분기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4%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ESSEC경영대학원의 제이머스 림 교수는 위기가 한두 달 더 이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유령이 부상한다"고 경고했다. 저성장·고물가·높은 실업률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아시아 중앙은행들에게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으면 경기침체를, 금리를 동결하면 인플레이션 고착이라는 불가능한 선택지를 안긴다. 림 교수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가치사슬 전체로 퍼져 거의 모든 아시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아시아 통화 약세와 시위 등 정치적 후폭풍도 예상한다"고 말했다.


충격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에너지 수출국은 고유가로 단기적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림 교수는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수출 가격 상승분이 다른 비용 상승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봤다.

가장 취약한 경제들의 전망은 더 어둡다. 피치솔루션스는 분쟁이 장기화하고 공급 차질이 심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호주와 브루나이를 제외한 모든 아시아·태평양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특히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국제수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나라는 스리랑카와 함께 전쟁 이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 의존하고 있었다. 러시아산 원유로 일부 충격을 흡수해온 인도도 해협의 장기 폐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