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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농협 개혁, ‘강행’ 아닌 ‘동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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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정영록 기자

승인 : 2026. 04. 23. 10:31

정영록 증명사진
정영록 경제부 기자.
"누구를 위한 개혁입니까. 현장 목소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잖아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농협 개혁방안'을 두고 한 농업단체 관계자는 이같이 반문했습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조합원 직선제를 도입하고, 범농협 관리·감독을 위한 외부 감사법인을 설치하는 등 '격변'을 담은 개혁안이 마련되는 과정에 정작 농업인(조합원)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마련한 개혁안은 정부 합동 특별감사 결과 확인된 농협의 방만경영 및 내부통제 부실 등이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농협회장 선거제도의 경우 기존 전국 농·축협 조합장 1110명이 투표에 참여하던 것을 조합원 187만명(중복가입 제외)이 1인1표씩 행사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간 소수 유권자가 특정된 것이 '금권선거'로 변질될 가능성을 키웠다고 봤습니다.

또한 농식품부는 중앙회·조합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정부 감사 범위를 지주·자회사 등으로 넓히고, 별도 외부 감사법인 '농협감사위원회(가칭)'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농협 내부통제만으로는 적절한 조직 관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부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농협을 주인인 조합원에게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조합원 의사결정 참여도를 높이고, 중앙회장의 견제장치를 확보해 농협을 투명하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합원이 바라는 개혁방향은 어떤 것인지,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에 대한 입장은 어떤지, 현장에서 우려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지 등 의견 청취 절차가 없었던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정부의 농협 개혁은 과거에도 몇차례 진행된 바 있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이원화)'입니다. 당시 농협은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유통·판매 등 경제사업과 금융·은행 등 신용사업이 일원화돼 있었습니다. 경제 부문 적자를 신용 사업 매출이 메우는 구조가 지속되자 이명박 정부는 경제사업 경쟁력 강화 및 비금융 리스크 완화 등을 목적으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때도 조직 운영 투명성 제고와 조합원 민주성 강화는 핵심 메시지로 전달됐습니다.

신경분리 14년차를 맞는 지금, 농협 경제사업은 여전히 적자 늪에 빠져 있습니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조합원 의사결정권을 확대하자는 문제의식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농협 구조를 바꿨을지 몰라도 현장 체감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개혁방향 역시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합원 직선제가 시행될 경우 농협회장은 선출직 권력과 맞먹는 상징성이 부여돼 오히려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정부의 감사 범위 확대와 외부 감사법인 신설 역시 과도한 자율성 침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안팎으로 입장차도 감지됩니다. 농업계에서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4-H중앙본부 등 단체가 숙고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반면 진보성향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사무금융노조 전국협동조합본부 등은 개혁안이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농업인이 어려우면 농협도 어렵다. 지난 14일 중동전쟁에 따른 영농부담을 확인하기 위해 충북 괴산을 방문했을 때 모 조합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곧 농협이 어려우면 농업인도 어렵다는 명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농협이 추진하고 있는 영농자재 공급, 농축산물 유통·판매, 복지사업 등은 농업·농촌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협 개혁은 단순한 '응급처치'가 아닙니다. 최소 수십년간 조직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수술'입니다. 속도전으로 관철된 개혁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파열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패는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강행'이 아닌 '동행'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정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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