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부총재는 "반도체 사이클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나면서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가 좋아졌고, 정부의 부양책으로 소비 심리도 살아났다"면서 금리 인상 검토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 "전쟁 직후인 4월 금융통화위원회 당시엔 전망 대비 성장률 하락과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동결했는데 이후 지금까지를 보면 성장은 2.0%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 같고, 물가는 2.2%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시장 상황은 늘 유동적이므로 한은이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중동전쟁 여파로 물가 상승 추세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 와중에 주식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과열 조짐도 나타나고 있으며, 환율도 역대급 고공행진 중이라는 점에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할 요인이 확대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가계부채 규모가 큰 우리나라에서 소비위축을 불러오고, 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유발하며, 안 그래도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상당하다.
한은 인사의 거시상황 인식과 공개 발언 사이에는 어느 정도 유격이 있어야 한다. 한은 고위 인사가 금리 방향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는 그래서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데 유 부총재가 방향을 정해두고 지극히 직접적으로 말했다는 점에서 그가 시장 반응을 정확히 예측하고 발언 수위를 정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은은 시장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을 보이면 본격적인 정책을 내놓기 전에 단계적으로 '구두 개입'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주곤 한다. 하지만 이번 유 부총재의 발언은 구두 개입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의 발언 이후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가 일제히 올랐다. 통화당국이 긴축 기조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로 시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금통위를 앞둔 시점에 나온 발언이어서 한은 내부에서 금리 인상 논의가 본격화한 것으로 비추어질 공산이 크다.
한은은 금통위원 출신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금통위원들은 금리에 관한 발언은 금기로 여겼다"고 한 발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에 관해 직접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이유를 아울러 명심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