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 "재투자보다 고배당" 요구할 것
손 대신 '장대'로 감을 따도록 촉진하는 자본주의
자본축적 대신 자본소비 나서면 한국경제 미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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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어떤 집의 농사가 풍년이 들자 그 집 일꾼들은 물론이고 품앗이를 했던 옆집 사람들과 그 집 일꾼들까지 몰려와 "돈 많이 벌었으니 내 몫을 내놓으라"고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급히 진화되긴 했지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논란도 이런 분위기와 동일선상에 있다.
주지하듯이 노동자는 회사가 적자가 나든 흑자가 나든 약속된 월급을 먼저 받는 '확정 권리자'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불황으로 큰 손해를 봤을 때도 직원들의 월급을 깎지는 않았다. 반면 주주는 회사가 모든 비용을 다 내고 남은 '나머지'에 대해서만 권리를 갖는 '잔여 청구권자'다. 주주는 회사가 망하면 가장 먼저 재산을 잃는 위험을 짊어지는 대신, 이익이 났을 때 그 보상을 가져가는 주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가 거둔 영업이익의 15% 이상을 달라면서 이를 영구적 제도로 못 박기를 요구하면서 파업을 위협하고 있고 이런 요구가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고 있다. 만약 이런 요구가 관철된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십중팔구 자본이 축적되기는커녕 자본의 소비가 촉진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성장을 기대하기가 점차 더 어려워질 것임은 불문가지다.
왜 그렇게 될 것인지를 추론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지금처럼 영업이익을 확정 권리자인 노동자들이 수십 % 가져가 버린다면, 소액투자자들을 비롯한 주주들이 이를 인내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개미 투자자들을 기업이 영업 이익을 내더라도 이를 다시 시설을 첨단화하고 연구·개발을 하는 데 재투자하더라도 대부분 동의해왔다. 그래야 나중에 기업 가치도 올라 주가의 상승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이익을 먼저 현금으로 다 챙겨가 버린다면 주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 아마도 "어차피 미래를 위해 투자해 봤자 나중에 수익이 나도 노동자들이 다 가져갈 텐데,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결국 주주들도 "미래 투자하지 말고 지금 당장 배당금으로 다 내놔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자본주의에서는 지금 당장 배가 고파도 따놓은 감을 다 소비하지 않고, 감 일부를 남겨뒀다가 그 감을 먹으면서 더 높이 달린 감을 잘 딸 수 있는 '장대'를 만들 유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장대의 성능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더 좋은 장대로 교체하고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경제는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제는 쇠퇴한다. 감을 다 소비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저축이고 이를 장대를 만드는 데 활용하는 것이 '투자'이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자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장대를 만들 재료까지 모두 현재의 성과급 잔치로 소비해 버리려 하고 있다. 원래 권리를 가지지 않았던 노동자가 이익의 몸통을 먼저 잘라가도록 제도화하라고 요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이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 역시 재투자를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서 이익금 가운데 재투자될 재원이 없어진다면, 새로운 첨단시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불가능해지고 그 기업은 더 이상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이는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지금 당장 고기 한 점을 먹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삼성전자의 노사 간 쟁점이 노조가 영업이익의 몇 %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영업이익의 몇 %를 특별상여금으로 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삼성전자 노조의 투쟁이 성공해서 노동자들이 주주처럼 이익의 N%를 영구적으로 확보하게 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이 정말 벌어지고 다른 기업들에도 유사한 제도가 자리 잡는다면, 아마도 외국자본을 비롯한 주주들도 성과급 잔치에 적극 참여한 다음, 미련 없이 우리 주식 시장을 떠나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성장은커녕 쇠퇴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가난해지고 일자리를 얻기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삼성전자의 노사협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느냐에 우리 경제의 많은 것이 걸려 있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