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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 신촌 봉원사에는 특별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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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기자

승인 : 2026. 05. 29. 17:03

천년 고찰의 역사 및 구한말 개화파 이야기 간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영산재로 외국인도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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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6일 서울 신촌 봉원사에서 봉행된 영산재 모습./사진=황의중 기자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호국불교 전통과 근현대 역사가 새겨진 사찰이 서울 도심 속에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바로 한국불교태고종 총본산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 봉원사이다.

신촌 봉원사는 원래 연세대학교 서울 캠퍼스 자리에서 지어졌다. 이곳에서 889년(신라 진성여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뒤 반야사(般若寺)로 불렸고, 고려말 공민왕 때 태고종의 종조인 태고 보우스님이 중건·보수하고 금화사라고 개칭했다. 이후 중건과 보수를 거치다가 조선 영조 때 이화여자대학교 뒤편의 현재 자리로 이전하게 된다.

구한말 봉원사는 개화파 인사들의 '아지트'로 활용됐다. 개화파의 숨은 조력자인 승려 이동인이 봉원사에 주석하면서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많은 개화파 인사들이 봉원사에서 비밀리에 모여서 토론을 벌이고 갑신정변을 모의하기도 했다. 훗날 서재필은 그의 자서전에서 봉원사를 두고 '개화파의 온상(溫床)'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전각이 많다. 하지만 봉원사에 있는 동종은 1760년 조선 영조시대에 주조된 작품이다. 원래는 충남 예산 가야사의 동종이었으나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조성하기 위해 사찰을 허물면서 서울 봉원사까지 오게 됐다. 성리학이 숭상되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동종은 오늘날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364호로 지정됐다.

신촌 봉원사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에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열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영산재가 큰 역할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봉원사 영산재는 영산회상도를 그린 대형 괘불 탱화를 대웅전 앞마당에 걸고 정성스럽게 재단을 차린 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세계 평화 및 국태민안을 발원하는 행사다.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계승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산재는 1973년 국가무형유산 제50호로 지정됐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재는 불보살과 영가를 절 입구에서 맞이해 모셔 오는 시련(侍輦) 의식으로 시작, 영가에게 영산재가 열린 이유를 고하는 대령(對靈), 영가의 업을 씻어내는 관욕(灌浴) 순으로 진행한다. 이후 대형 부처님 그림(괘불)을 야외 마당에 모시는 괘불이운(掛佛移運), 부처님께 정성스러운 공양을 올리고 법을 청하는 상단권공(上壇勸供), 공양을 올릴 때 행하는 전통 무용(바라춤·나비춤)을 진행하는 식당작법(食堂作法)에 이어 불보살과 영가를 다시 배웅하며 위패를 불사르는 봉송(奉送)으로 행사는 끝난다.

더운 날씨에 장시간 진행되는 의례임에도 매년 현충일에 수백 명이 봉원사를 찾고 있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 관람객에게 봉원사 영산재는 입소문을 탄 지 오래다.

신촌 봉원사 관계자는 "봉원사 스님들은 현충일 영산재를 위해 많은 정성을 드린다"며 "무료로 누구나 관람 가능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될 만큼 가치있는 무형문화유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한국불교가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계승하는 전통 문화유산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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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봉원사에서 진행된 영산재 중 시련 의식에서 나비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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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박상선 기자= 신촌 봉원사 주지 현성스님.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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