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화랑가에서 인간 존재와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전시들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학고재의 이종구 개인전 '사유(Pensive): 思惟'와 노화랑의 변연미 개인전 '스스로 그러한 숲'이다. 두 전시는 각각 불상과 숲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지만,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에 주목하며 관람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이종구 개인전 '사유(Pensive): 思惟'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한국 불교 조각의 아름다움과 정신세계를 회화로 풀어낸 전시다. 전시장에는 총 38점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다양한 불교 조각상이 화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종구, 사유_월인천강,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x1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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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의 '사유_월인천강'. /학고재
이종구는 문화재나 종교 조형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가 그려낸 불상은 신앙의 대상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은 상징으로 다가온다. 특히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들은 생각에 잠긴 존재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 깨달음과 성찰의 문제를 탐색한다.
대표작에서는 어둠 속에 놓인 사유상과 작은 촛불이 대비를 이루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침묵 속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의 모습은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세월의 흔적이 깃든 목조 불상의 질감과 표정, 옷 주름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화면은 전통 조각이 지닌 조형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 풍경을 환기한다. 작가는 오래된 문화유산 속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 정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현대적 회화 언어로 재해석한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이종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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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작가. /학고재
노화랑에서 선보이고 있는 변연미 개인전 '스스로 그러한 숲'은 재불 화가 변연미가 20여 년 넘게 이어온 숲 연작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1994년부터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는 숲을 단순한 풍경의 대상이 아닌 감각과 인식의 장으로 바라보며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다시 숲' 연작과 'Spectral Forest'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이 출품됐다. 화면을 가득 채운 나무와 잎, 빛의 흔적은 실제 숲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추상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가까이에서 보면 붓질과 물감의 층위, 커피 가루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질감이 드러나고,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숲의 공간감이 형성된다.
[노화랑] 다시 숲21-09_259x388cm_ acrylic, coffee grounds on canvas_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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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미의 '다시 숲21-09'. /노화랑
변연미에게 숲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작가는 숲을 걷는 동안 나무와 빛, 공기,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탐색해왔다. 그의 작업에서 숲은 특정 장소의 재현을 넘어 빛과 시간, 감각이 중첩된 총체적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화면 속 나무와 잎, 빛의 흔적들은 구체적 형상을 유지하면서도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대상을 인식하는 동시에 감각적으로 경험하도록 이끈다.
특히 1999년 유럽을 강타한 대형 태풍 이후 뿌리째 쓰러진 나무와 다시 회복되는 숲의 모습을 목격한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후 숲은 안정된 풍경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 붕괴와 회복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 구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 뒤엉킨 가지와 중첩된 색채, 그 사이를 흐르는 빛은 자연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과 예측할 수 없는 힘을 동시에 드러낸다.
노화랑 관계자는 "변연미에게 숲은 끝내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이자 매번 새롭게 마주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이번 전시는 자연과 인간, 감각과 인식 사이의 간극을 탐색해온 작가의 오랜 사유를 응축한 자리로, 관람객들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숲의 이미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