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보수적 운영 불가피
‘NCR 예외’ 시평 20위 건설사 쏠림 가속화될 듯
업계 "복합적 재무평가 체계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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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행사 폐업이 급증하고 지방 미분양 누적이 가속되는 가운데, 제도 개선 없이 규제만 단계적으로 강화될 경우 건설업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7월 도입한 토지신탁 위험액 한도 규제는 올해 말 자기자본 대비 150%에서 120%로 강화된다. 이어 2027년 말에는 최종 목표치인 100%까지 낮아질 예정이다.
정비사업을 영위하는 신탁사 13곳의 평균 자본 총계는 약 4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액 한도가 120%로 축소되면 사업장별 수용 가능한 규모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신탁사들의 리스크 관리 기조는 지금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미 굳어진 대형 건설사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표준사업약정서 특약에 따르면 HUG 보증 대출과 연계된 NCR 예외 혜택은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 이내 건설사가 시공을 맡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신탁사 입장에서는 한정된 위험 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예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위 20개 건설사를 선호할 유인이 크다. 연말 규제 강화를 앞두고 현장에서는 이미 시공사 선별 기준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이 중견 건설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신탁 방식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시공능력평가 3위인 대우건설과 함께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한 데 이어 영등포구 신길10구역 '써밋 클라비온' 역시 같은 신탁사·시공사 조합으로 다음 달 분양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탁 방식 정비사업의 대표 성공 사례들이 대부분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대형 건설사와 결합한 구조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에서 20위 룰이 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형사 중심의 정비사업 집중 가속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은 48조665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두 곳이 전체의 40.6%에 해당하는 약 19조7000억원을 차지했다. 상위 10개사의 수주 물량 가운데 78%는 수도권에 집중됐으며 건당 평균 수주액은 6576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올해 역시 흐름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상반기 기준 현대건설·GS건설·삼성물산 3개사의 누적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20조원에 육박한 반면 나머지 7개사의 합산 수주액은 6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형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조합원 수요와 신탁사의 보수적 리스크 관리가 맞물리면서 정비사업 시장의 양극화가 구조적으로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시공능력평가 20위 밖 중견 건설사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는 최근 3년간 공사 실적과 신인도 등을 바탕으로 산정되는 만큼 현재 재무 건전성이 우수한 기업이라도 순위 차이만으로 입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부채비율 200% 이하를 유지하고 PF 우발채무 관리가 양호한 중견사들도 시공능력평가 순위에 가로막혀 신탁 정비사업 참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 정비사업에서 밀린 중견 건설사들은 공공공사나 비주택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지만 감소하는 일감을 만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공급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표가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개발업 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 디벨로퍼(시행사) 폐업 신고 건수는 614건으로 전년 동기(94건) 대비 6.5배 증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신규 등록은 348건에 그쳐 폐업 건수가 신규 등록의 1.8배에 달했다. 4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6만5179가구 가운데 73%가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며 준공 후 미분양의 지방 비중은 85%에 달한다. 지방과 중소형 건설사의 경영 여건이 수도권 핵심 정비사업 시장과는 전혀 다른 국면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논란의 핵심은 건전성 강화 자체가 아니라 평가 기준의 적정성"이라며 "연말 120%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신용등급, 부채비율, PF 우발채무 등 실질적인 재무적 지표를 함께 반영하는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정비사업 시장 양극화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신탁사 건전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를 유지하되 제도 설계를 보다 정교하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라는 단일 기준 대신 신용등급, 부채비율, PF 우발채무 등을 반영한 복합 평가 체계를 도입하고, 초기 토지 매입비가 발생하지 않는 정비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기자본 규제 산정 방식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금융위원회와 HUG가 법 개정 없이도 표준 사업 약정서 특약 조정을 통해 일정 부분 제도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히 신탁 정비사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건설산업 전반의 구조적 양극화와 맞닿아 있다고 진단한다. 서울·수도권 핵심 정비사업에는 대형 건설사가 집중되는 반면 민간 주택시장과 지방 건설경기는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견·중소 건설사의 경영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건설산업은 저성장·고비용·고위험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건설산업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설투자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건설기업의 생존 기반 확보가 병행돼야 하며, 단기적으로는 물량 창출을 통한 경영 안정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