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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격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역시 질문이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엔의 창설 이념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진영 간 무력 충돌의 첫 번째 사례다. 6월 27일 유엔안보리는 "유엔 회원국은 대한민국 영역에서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안전 회복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결의안 S/1511을 채택했다. 과거 적대국이었던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나토 가입을 전제로 한국전쟁에 파병해 1951년 10월과 1952년 2월 각각 나토에 가입했다. 1950년 10월 9일 유엔군의 38선 돌파와 10월 16일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참전한 시점에 유엔 회원국 간 충돌이 일어났다. 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북한의 침략이 정지되었으니 38선에서 유엔군은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월 13일 유엔 한국문제중간위원회는 북한을 한국 정부의 통치 아래 두지 않고 남북 총선거가 행해질 때까지 유엔군사령관의 통치 아래 둘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권한을 38선 이남에 국한시키고 북한 내 민간행정기구 설치를 지시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북진통일 정책은 유엔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10월 3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파니카르 인도대사에게 미군이 38선을 넘을 경우 중국의 참전은 필연적이라고 경고했다. 1951년 2월 1일 유엔 총회는 중국이 북한을 원조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에 종사하고 있다는 결의안을 찬성 44표 반대 7표, 기권 9표로 가결시켰다. 미국과 서구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이 찬성했고 소련, 벨라루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인도, 버마가 반대했다. 그리고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예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이 기권했다. 한국 정부가 참여치 않은 채 1951년 7월부터 판문점에서 정전 협상이 개시되면서 한국전쟁은 다시 38선을 사이에 놓고 지구전이 되었다. 당시 주일본 호주대사 맥마흔 볼은 유엔 총회의 이러한 결정 과정은 한국전쟁의 도의적 정치적 논점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한국전쟁은 강대국 간의 권력정치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2026년 6월 유명 전쟁게임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모던워페어4'가 제2차 한국전쟁을 주제로 출시 예고되었다. 한국전쟁 재발을 예상한 소설이나 영화는 드물지 않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7년 역임한 캐스퍼 와인버거가 1997년 공동 출간한 '다음에 올 전쟁(The Next War)' 그리고 미국·뉴질랜드 합작 영화 '제4차 세계대전(World War Four)'이 2025년 한국에서 방영되었다. 남북한과 중동 그리고 유럽의 전쟁이 도미노처럼 연계되어 한반도를 무대로 핵무기까지 사용되는 세계대전을 보여준다. 2001년 데일 브라운의 '한국군 북침(Battle Born)'은 전쟁을 한반도의 숙명처럼 묘사했다.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한반도는 아시아의 체스 시합장으로 사용되어 왔다"거나 "한반도는 중동이나 발칸반도와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태어나 분할되었으며 한국 같은 나라에서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묘사한다. 문제는 한국과 북한 모두를 신뢰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2000년대 유엔안보리의 분열과 진영(陣營)화의 재현은 마치 제1, 2차 세계대전의 전조처럼 보인다. 더구나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동북아와 세계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끌고 갈 여지가 농후하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한국전쟁에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의 무력충돌이 계속되는 이유는?" "평화과정에 합의와 파탄이 반복되는 이유는?" "외교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무력으로 해결이 가능한가?" "한국사회는 지성적 사회인가?" 여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의 당위성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세계의 안보 유지와 평화 기여 때문이다.
크로울은 강의를 마치며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작성된 후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질문을 하라고 했다. "내가 간과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전략가들의 무거운 책임을 말한 것이다. 군사력의 우세만 믿고 저지른 북한의 전쟁 오판은 시시포스의 돌처럼 현재까지 한반도에 냉전의 후과를 남겼다. 이는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힘에 의한 문제 해결로는 문제가 끝나지 않음을 간과한 것이다. 중동과 유럽에서 전운이 짙은 가운데 다른 한편에는 평화를 위한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카타르의 평화외교와 종교간 대화(Interfaith Dialogue), 튀르키예와 스페인 등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유엔문명연대(UN Alliance of Civilization)와 같은 인도적 이니셔티브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 유일의 홍익인간을 건국정신으로 가진 대한민국이 미래를 위해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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