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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의 안보정론] 국방개혁과 K-문민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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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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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국방개혁 둘러싸고 거센 논란 제기된 상황
헌팅턴의 '객관적' 문민통제에 대한 통찰 살피고
정치에 종속된 군대가 초래한 비극 잊지 말아야
김태우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선택적 모병제, 스마트 강군, K-방산 및 국방 R&D 확대, 군 구조 및 병영 문화 혁신, 군 교육기관 통합 등의 국방개혁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3군 사관학교 통폐합 및 태릉 화랑대의 지방 이전 계획을 공개했다. 안규백 국방장관도 7월 1일 전군지휘관회의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분리, 사관학교 통합, 방첩사령부 개편 등을 시급한 국방개혁 과제로 재확인했다.

그런데 전작권 체제의 변경, 사관학교 통폐합, 화랑대 이전 등에 대해 군 관련 인사들과 안보 커뮤니티의 반대가 거세다. '안보·국방을 파괴하는 위험한 안보실험'이라는 비난도 들린다. 문민통제를 이유로 정부의 국방개혁에 순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민통제는 현대 국가들에 있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대원칙이지만, 그럼에도 전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새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저서 '군인과 국가(The Soldier and the State)'에서 '객관적 문민통제'와 '주관적 문민통제'를 구분하고 있다. 객관적 문민통제란 군의 직업적 전문성, 자율성, 정체성 등을 존중하고 군을 정치로부터 철저히 분리하여 발전시키되 군의 일탈행위를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주관적 문민통제는 정치권력이 군을 자신들의 이념이나 당파적 이익에 종속시키고 군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민간 정치집단처럼 통제·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외 여건들을 종합할 때, 한국에 필요한 'K-문민통제'는 적어도 네 가지 요건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 첫째, 헌팅턴이 말하는 객관적 문민통제는 기본이다. 군의 전문성·정체성·명예는 존중되어야 하며, 군을 정치화하여 정치적·이념적 하수인으로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정치권력은 군을 선도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적·도덕적 우월성을 가져야 한다.

셋째, '평화로운 남북 상생'과 '튼튼한 안보'는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는 '두 수레바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북한이 대남도발을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확인할 때 진정한 남북 상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북 기조하에서든 '튼튼한 안보와 강한 군대'는 상수(常數)여야 한다.

넷째,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안보국방 정책을 '임기와 재선'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정치 일정에 맞추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런 요건을 갖춘 K-문민통제하에서는 '국방개혁'을 앞세워 군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없을 것이고, 정책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이 군에 칼질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국정원의 간첩 잡는 기능을 박탈하거나 북한군의 보위사령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중에 방첩사를 해체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임기 내 성과'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전작권 분리, 사관학교 통합, 화랑대 이전 등에도 다양한 찬반론이 있겠지만, 속도전은 능사가 아니다. 문민통제를 주장하기에 앞서 진정한 K-문민통제의 작동 여부부터 먼저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잘못된 문민통제가 군을 망치고 망국을 자초한 역사적 사례는 많다. '군 줄세우기'와 '군의 줄서기'가 합쳐지면 정치권력 충성파들이 군의 상층부를 차지하여 군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허물고 지적 공동화(intellectual hollowization)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 군대는 독재정권의 수호자가 되어 국경선 밖이 아닌 내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에서 이기는 군대는 되지 못한다.

1912년 발칸전쟁에서 패배하여 유럽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했던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그랬고,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군들이 거세된 소련군은 1939년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에서 참패에 가까운 수모를 당했다.

1975년 남베트남군의 수뇌부가 적과 싸우기보다 사이공의 권력층에 줄서기에 매달리던 중에 북베트남군이 남침을 재개하자 남베트남군은 미국이 남겨준 무기들을 버리고 패주했고, 조종사들이 도주하여 미군이 남긴 전투기들은 이륙조차 하지 못했다. 영성이 떠난 군인들에게는 값비싼 무기도 고철에 불과하다. 남침 개시 56일 만에 남베트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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