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텅뭉텅 썬 뭉티기, 접시에 들러붙는 신선함 자연·예술 속 사색의 시간, 사유원·간송미술관 엄흥도 묘·육신사, 충절의 마음 돌아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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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녹양구이 뭉티기. / 지엔씨이십일 제공
음식에 집착하는 모습은 식탐(食貪)이라고 해, 과거 한때는 욕구에만 충실한 일차원적인 사람을 얕잡아보는 기준으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하나의 교양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변화와 함께 음식이 여행의 주요 목적이 된 지도 오래다. 각 지역의 특징 있는 음식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대구의 뭉티기는 여행 동기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다. 쫄깃하면서도 찰진 식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면 대구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찾아간 대구에는 잠시 또 다른 생각에 빠져 고기의 단백질이 아닌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곳들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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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녹양구이 뭉티기. / 지엔씨이십일 제공
뭉티기는 정확한 탄생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보통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소 뒷다리살을 큼직하게 썰어 참기름, 마늘, 굵게 빻은 고춧가루 등을 섞은 양념에 찍어 먹는 방식이 자리잡은 것으로 대구시는 설명한다. 아무래도 써는 방식이 육회 등 다른 생고기 음식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다. 뭉티기라는 이름도 뭉텅뭉텅 썰었다는 데서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뭉티기는 이를 담은 접시를 기울여도 고기가 쉽게 흘러내리지 않는다. 도축 직후의 소고기는 점성이 살아 있어 서로 달라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접시 기울이기는 한번 쯤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체험 요소이기도 하다. 이는 신선함과 찰기를 증명한다. 뭉티기를 다루는 식당은 대구 전역에 퍼져 있지만 수성구 쪽에서 전문점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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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유원 소요헌. / 이장원 기자
뭉티기 생각이 대구행을 이끌었다는 생각을 하자 문득 생각이란 것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진 사유(思惟)라는 단어도 떠오른다. 대구 군위군 팔공산 자락에 자리잡은 사유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은 사유의 의미를 자연과 현대 건축 속에 품은 곳이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책로에서 인생과 세상의 희로애락을 엿보는 건축물들을 만난다. 포르투갈 출신의 현대 건축 거장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은 사유원의 대표적 건축이다.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건축물에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조명 없이 자연의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도록 해 대비의 깊이를 더했다. 한국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의 현암, 사담, 명정은 자신을 돌아본다는 사유원의 철학을 건축의 미로 승화한 곳이다. 사유원은 약 1100종의 수목이 자리하고 있으며, 9개의 주제 정원도 있어 차분하게 산책하기 좋다. 팔공산 비로봉을 바라보는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모처럼의 사색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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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유원 명정. / 이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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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유원. / 이장원 기자
자연과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이어가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과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표방한다. 지난 2024년 9월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의 최초의 지역분관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한 국보·보물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연구해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거대한 둥근 나무 기둥들은 선생의 소나무 같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선생이 당시 기와집 10채 값에 달하는 돈을 주고 구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통해 '문화보국' 정신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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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 지엔씨이십일 제공
잠시 문화보국 정신에 대한 생각에 잠겨 보니 충절이라는 가치가 떠오른다. 뭉티기로부터 펼친 생각의 나래가 어쩌다 보니 충절까지 왔다. 현대 사회에선 많이 퇴색된 듯한 충절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본다. 영화 '왕과사는남자'로 다시 주목받은 엄흥도의 묘가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있다. 단종 사후 은거해 행적이 정확히 알려지진 않은 엄흥도의 진묘일 가능성이 있는 곳 중 하나로,'충의공 엄흥도 역사탐방로'를 따라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달성군의 육신사로도 이어진다. 육신사는 단종 복위 운동을 한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숭절당(崇節堂)이 주는 경건함 앞에서 잠시 또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