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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의 에이전틱 이코노미⑮] 구직이 아닌 창업으로 -실업 정책의 재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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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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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사실이 바뀌면 저는 마음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20세기 경제학의 거장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남긴 유명한 반문이다. 그는 1934년 5월 루즈벨트를 만났고, 이듬해 미국은 사회보장법을 통해 실업수당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대공황이라는 배경, 케인즈의 사상, 그리고 루즈벨트의 뉴딜이 만나 만들어진 처방전이었다. 그 처방은 20세기 후반 내내 잘 작동했다. 한 공장이 문을 닫아도 다른 공장이 열렸고, 실업자는 다시 노동자로 돌아갔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다른 공장은 열리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AI를 우화적 이해를 위해 '요정'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것은 우화가 아니다. AI 에이전트와 지능형 로봇이 공장, 사무실, 그리고 산업 전반의 거의 모든 노동을 대체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1935년의 처방전을 쓰고 있다.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물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당신은 여전히 같은 처방입니까?"

◇ 카나리아에게 마스크를 씌우다

⑨편에서 우리는 갱도의 카나리아를 보았다. 청년들이 AI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일자리는 20% 가까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 카나리아가 갱도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을 건네는가. 실업수당이다. 그리고 그 실업수당에는 하나의 전제가 붙어 있다. "다음 취업까지의 임시 보조금."

문제는 취업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나리아가 죽어가는 갱도 안에서 마스크를 씌우고 "조금만 참으세요, 공기가 곧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하는 격이다.

◇ 1935년의 처방전

케인즈의 시대에 실업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그는 총수요가 무너져 노동자가 노동자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상황을 진단했고, 정부가 그 공백기 동안 노동자의 지갑을 채워주면 다시 노동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그 처방은 잘 작동했다. 20세기 후반 내내 노동시장은 확장됐고, 실업자는 다른 공장의 노동자로 돌아갔다. 케인즈의 사상은 옳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마주한 실업은 성격이 다르다.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공장 안의 일이 통째로 AI에게 이관되는 것이다. 개발자의 자리가 사라졌으니 다른 개발자 자리에 지원하라는 처방은, 목수의 자리가 사라졌으니 다른 목수 자리를 찾으라던 산업혁명 시대의 처방과 같다. 200년 전 그 처방은 결국 목수를 공장 노동자로 재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엔 재배치할 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 처방을 바꿀 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이 시리즈가 이미 그려놓았다.

⑬편의 에어베어링 회사 사장을 다시 떠올려보자. 10여 년간 특수 소재를 만들어 오다가 대기업 납품처를 잃고 매출이 사라진 그 회사. 사장은 AI에게 물었다. 이 소재를 어디에 팔 수 있는가. AI는 몇 분 만에 20개 넘는 참고자료를 정리해 답을 내놓았다. 이 한 번의 대화가 수천억원 매출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사장은 실업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실업자였다면? 그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다음 개발자 자리를 찾을 때까지의 임시 보조금"이 아니라 "AI를 자기 자본으로 삼아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실업수당의 목적을 바꾸는 것이다. 구직이 아니라, 새 자본가가 되는 창업 자본으로. 

◇ 실업 수당에서 창업 지원금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첫째,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 실업 수당이 아닌 '창업 지원금' 같은 이름이 더 바람직하다.

둘째,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다음 직장을 구직 중이라는 증명"이 지급 조건이다. 이것을 "AI 기반 창업계획서"로 바꿔야 한다. 창업이 모든 실업자의 답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정책은 창업을 예외로 두고 있다. 창업을 원칙으로, 재취업을 예외로 뒤집을 필요가 있다.

셋째, 규모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실업수당은 몇 달간의 생계 유지비다. 창업을 위한 종잣돈은 다르다. 최소 1~2년의 생계 지원과 함께 AI 도구 사용료, 컨설팅 비용, 초기 자본까지 묶어서 지원해야 한다. 국가가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는 셈이다.

◇ 국가의 지갑에서 새 자본가의 지갑으로

그럴 자금은 어디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AI가 만들어낸 부의 일부를 그리로 돌리면 된다. ⑫편에서 우리는 노동의 몫이 자본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았다. 자본으로 이동한 몫의 일부를 세금으로 되돌려 사람들이 새 자본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 이것이 노동의 몫이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순환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⑫편의 결론이 그 답을 이미 준비해 두었다. 자본이 노동을 다 흡수한 자본주의는 자기 팔다리를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소비자가 사라진 시장에서 자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삼킨다.

◇ 케인즈의 뒤를 이을 것인가

케인즈는 자신이 지지했던 처방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이 바뀌면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가 오늘 살아있다면, 90년 전 자신이 지지했던 처방전을 접어 서랍에 넣고 새로운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실업수당'이 아닌 '창업 지원금'이라는 처방전을.

우리는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 그가 남긴 처방전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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