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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반찬 들고 안부 묻는 ‘실버셰프’…복지 수혜자서 나눔의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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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7. 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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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생명숲 100세 힐링센터' 사업
사별·별거 등으로 독거하는 남성 어르신 위한 프로그램 지원
직접 만든 음식 들고 찾아가 안부 물으며 서로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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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생명숲 100세 힐링센터 프로그램 중 할로 실버 셰프에 참여한 어르신들. /김태훈 기자
"오늘은 납품하는 날입니다."

23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호노인복지관 조리실에 모인 남성 홀몸 어르신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납품'의 목적지는 거래처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다. 접 배운 요리로 반찬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는 '할로 실버셰프' 활동이다. '할로'는 할아버지의 '할'과 안녕을 뜻하는 영어 '헬로(Hello)'를 합친 말이다. 참여자들은 매주 한 차례 요리를 배우고, 한 달에 한 번 직접 만든 반찬을 지역아동센터와 재가노인복지센터 등에 전달한다.

이날도 버섯야채볶음과 소고기가지볶음이 차례로 반찬통에 담겼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같아요?" 한 어르신이 기자에게 농담을 건네자 조리실에 웃음이 번졌다. 앞치마를 두른 어르신들은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흔들고 간을 맞추며 반찬을 완성했다.

강장순 어르신(70)은 "오늘은 우리가 먹는 날이 아니라 남을 먹이는 날"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참여자들은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는 날을 '납품일'이라고 부른다.강 어르신이 손질한 재료를 옆자리의 송재형 어르신(70)에게 건네자 송 어르신은 곧바로 팬에 넣고 볶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동료처럼 보였지만, 두 사람은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송 어르신은 "친구보다 '식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며 "여기서 만난 뒤 다른 복지 프로그램에도 함께 다니고, 서로 집에 초대해 식사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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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서호노인복지관 조리실에서 할로 실버셰프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김태훈 기자
달라진 것은 인간관계 뿐만이 아니다. 강 어르신은 올해 초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주로 반찬을 사 먹었다. 요리를 배운 적이 없어 이곳에서 처음 칼 잡는 법부터 익혔다. 몇 달이 지나자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직접 장을 보고 집에서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강 어르신은 "밥솥을 새로 장만했다"며 "집에서 직접 해 먹는 게 사 먹는 거보다 더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남성 홀몸 어르신 가운데는 식사 준비나 집안일을 해본 경험이 적은 경우가 많다. 끼니를 대충 해결하고 외출까지 줄면서 사회적 관계가 끊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생명숲 100세 힐링센터' 사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남성 홀몸 어르신을 발굴하고, 복지관 등에서 요리와 정리·수납, 위생 관리, 스마트폰 활용 등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할로 실버셰프'는 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날도 어르신 두 명이 복지관을 찾아 신청 방법을 물었다.

요리 수업을 맡은 한미경 강사(58)는 "초창기에는 수업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만든 반찬을 싸 들고 가기 바빴는데, 지금은 여기서 함께 식사도 하고 서로 안부도 챙긴다"고 말했다. 이어 "즉석밥을 드시던 분이 밥솥을 사고, 며느리가 '아버님 음식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고 자랑한 분도 있다"며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드실 수 있도록 값싼 식재료와 쉬운 조리법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요리가 끝나자 어르신들은 반찬통 뚜껑을 하나씩 열어 포장을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와 재가노인복지센터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용균 어르신(68)은 "다른 프로그램은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배운 걸 다른 사람에게 다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직접 만든 음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던 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좋더라"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니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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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나눔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김천진 어르신. /김태훈 기자
'할로 실버셰프'들은 직접 만든 반찬을 다른 홀몸 어르신들 집을 찾아가 건네줬다. 건강은 어떤지, 식사는 잘 챙겨 먹는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찬을 전달받은 김천진 어르신(80)은 다리 수술 이후 외출이 쉽지 않아 하루를 집 안에서 보낸다. 김 어르신은 "반찬도 고맙지만 직접 찾아와 얼굴 보고 안부를 물어주는 게 더 고맙다"며 "혼자 지내다 보면 사람 만날 일이 잘 없는데 대화를 나누니 힘이 나고 좋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국내 18개 생명보험사가 참여해 2007년 설립됐다. 재단은 2016년부터 전국 15곳에서 '생명숲 100세 힐링센터'를 운영하며 남성 홀몸 어르신의 생활 자립과 사회관계 형성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600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재단 관계자는 "요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식생활을 꾸릴 수 있는 자립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배운 요리로 다시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도록 돕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라며 "참여 어르신들이 복지서비스의 수혜자를 넘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새로운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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