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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지경학 시대, CEO는 시장보다 국가를 먼저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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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8. 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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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호 교수
조철호 (대구한의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기업의 경영환경이 격변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격변의 시대에 가장 큰 위험은 격변 자체보다는 어제의 논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과거 기업의 중요한 질문은 "어디에서 가장 많이 팔 수 있는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질문은 달라져서 "어디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 "어느 나라와 거래해야 안전한가?"이다. 기업 경영의 중심축이 시장에서 국가로 이동하여 시장보다 국가의 정책과 국제관계가 우선시되는 '지경학의 시대'가 본격화됐다.

세계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더 넓은 시장을 확보하고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국경은 기업 활동의 장벽이 아니라 기회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단순한 무역분쟁을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 배터리, 첨단기술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핵심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반도체 자립과 첨단기술 국산화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전기차 구동 모터와 풍력발전기, 첨단 전자기기, 방위산업 등에 사용되는 고성능 영구자석에는 희토류가 핵심 소재로 활용된다. 중국은 희토류 채굴은 물론 정제 및 가공과 관련 공급망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수출 통제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세계 제조업계가 긴장한다. 이제는 특정 광물이나 핵심부품 하나의 공급 차질이 여러 산업의 생산과 투자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도 기업 경영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은 전략산업 보호를 위해 고율의 관세와 산업 보조금을 활용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역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해 환경규제를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자유무역이 기업 경쟁력을 높였다면, 이제는 각국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이 기업의 투자와 생산 전략을 좌우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기업은 더 이상 시장만 바라보고 경영할 수 없게 됐다. 국제정치와 외교, 무역정책과 경제 안보가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기업이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이며, 지경학의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과거의 기업전략은 시장, 고객, 가격, 품질의 순으로 고려되었다면 지금은 국가, 공급망, 규제, 시장의 순으로 바뀌고 있다. 애플은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와 베트남으로 다변화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추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정책을 동시에 고려하며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공통적으로 시장성보다는 국가의 정책과 국제질서가 기업전략을 결정함을 보여준다.

지경학은 글로벌 공급망의 개념마저 바꾸어 놓았다. 과거에 공급망에서 얼마나 싸게 생산하는가가 기업의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끊임없는 안정적인 공급망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팬데믹과 미중 갈등을 겪으면서 기업들은 효율성만 추구하는 공급망의 한계를 이미 경험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마스크와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경험한 세계 경제는 '가장 저렴한 공급망'보다 '가장 안정적인 공급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만을 추구하던 기존 전략에서 벗어나 생산기지를 여러 국가로 분산하고, 핵심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우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이제는 공급처의 다변화, 핵심부품 내재화, 재고 전략,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생산기지의 분산 등이 새로운 경영전략이 되고 있다. 즉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에서 회복탄력성이 새로운 경쟁력이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CEO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 CEO는 주로 고객과 경쟁사, 시장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러나 지경학 시대의 CEO는 국가 간 갈등과 국제정치, 무역규범, 기술패권, 경제제재, 환경규제에도 깊은 안목을 갖춰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조직을 관리하는 경영자를 넘어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는 전략가이자 외교적 감각을 갖춘 리더가 돼야 한다. 기업의 미래는 지경학적 상황에 대한 경영자의 안목과 대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경학 시대에는 더 안전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시장을 읽는 능력 이상으로 국가를 이해하고 세계를 읽는 통찰에서 시작된다. 즉 "지경학 시대의 기업 경쟁력은 시장점유율이 아닌 국가 전략을 읽는 통찰, 공급망을 설계하는 역량,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리더십에서 결정될 것이다."

조철호 교수는…
경희대 경영학사, 한양대 경영학석사, 경희대 경영학박사. 현 대구한의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중심 연구 분야는 품질경영과 의료서비스 혁신. 2023년 대한민국 '국가품질상(국무총리표창)'과 2026년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서비스공로상' 수상. 대한경영학회 36대 회장 역임. 한국경영학회, 한국품질경영학회, 한국서비스경영학회, 한국기업경영학회 등에서 부회장으로 활동 중. 'SPSS/AMOS활용 구조방정식 논문통계분석(2021)', 'NCS기반 실무자를 위한 문제해결능력(2018)' 등 다수의 논문 집필.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철호 대구한의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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