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아들과 유복녀, 70여년 아버지 기다림…"마음속에 더 많이 기억"
틸러리 "과거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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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과 시민들은 휠체어에 앉은 흰색 제복 차림의 노병에게 몸을 낮춰 악수를 청했다. 노병이 들고 있던 '고향 영웅' 안내판에는 일리노이주 캘러멧시티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진주만·패트릭 로이드·해군'이라는 참전 이력이 적혀 있었다.
악대는 연주를 이어갔고 주변 사람들은 노병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넘게 흘렀지만, 참전용사를 기억하고 맞이하는 장면이 공항 한복판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한국전쟁에서 아직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미군 735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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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한국전쟁 당시 B-26 인베이더를 타고 북한 상공에서 야간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미군 해럴드 다운스 중위의 아들 릭 다운스와 딸 도나 녹스가 70여 년 전 가족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세 살이었던 릭은 "아버지는 머릿속보다 마음속에서 더 많이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한 달 반 뒤 태어난 도나는 아버지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와 사진, 편지를 통해 아버지를 알아갔다.
다운스 중위는 당시 26세였다. 미시간대를 졸업해 첫 직장에 들어갔지만, 출근 첫날 예비군 재소집 통보를 받았다. 릭은 아버지가 "연필도 아직 깎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했다.
가족은 다운스 중위가 전사자가 아닌 실종자로 분류됐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도나는 "계속 희망하고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은 희미해졌다"며 "끝맺음(closure)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정말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았다"고 말했다.
남매는 답을 찾기 위해 북한도 방문했다. 릭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성공을 보면서 아버지의 희생에서 "무언가 좋은 것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이 기다리는 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의 답은 북한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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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한국전·냉전(Korea and Cold War·KCW) 연례 회의에 참석한 전쟁포로·실종자(POW/MIA) 가족들의 반응은 각별했다. 몇몇은 한국에서 온 국가보훈부 관계자들에게 "'땡큐'를 한국말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알려주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얼굴에는 긴 기다림이 남긴 그늘도 보였다. 70여 년이 지났지만 부모와 형제, 남편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은 워싱턴 D.C.의 미국 메모리얼데이 행사와 퍼레이드에서 만났던 전사자 자녀들의 어두운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전쟁과 걸프전 등 전쟁의 시기는 달라도 먼저 떠난 가족을 이야기하는 표정은 닮아 있었다.
저녁 위로 만찬은 오마하 전략공군사령부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렸다. 대형 군용기들이 전시된 공간에 유가족 500여명을 위한 식탁이 마련됐다.
박물관의 기존 한국전쟁 전시 공간에는 서울·인천 등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모래주머니, 군용차, 네브래스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유품이 놓여 있었다. 다운스 중위가 탑승했던 인베이더 계열의 A-26B 전시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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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기억하는 모습은 하루 전 워싱턴 D.C.에서도 이어졌다. 국가보훈부는 6일 '2026 국제보훈콘퍼런스' 감사 만찬에서 전쟁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옮긴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장남 로렌스 헤스에게 '6·25전쟁 영웅 기념패'를 수여했다. 로렌스는 "아버지의 진정한 보상은 전쟁고아들의 성공이었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미 해병대 종군 사진기자였던 고(故) 로버트 H. 모지어의 아들은 아버지가 입양까지 고려했던 한국 소년 '킴(KIM)'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전쟁의 기억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7월 27일 워싱턴 D.C.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존 틸러리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이사장(전 주한미군사령관)이 꺼낸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가 떠오른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이를 반복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