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어 아들, 한국전쟁 때 '킴' 찾아…"형제 같은 인연"
워싱턴 첫 국제보훈콘퍼런스...강윤진 "22개 참전국 유대·198만 용사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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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한국전쟁 때 미국 해병대 종군 사진기자였던 고(故) 로버트 H. 모지어의 아들 로버트 P. 모지어 씨는 부친이 입양까지 고려했던 한국 소년 '킴(KIM)'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은 이날 콘퍼런스에서 22개 참전국의 유대 강화, 198만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 기억, 그 가치의 미래세대 계승이라는 세 가지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강 차관은 7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미국 국방부(전쟁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DPAA)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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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헤스 대령의 아들 로렌스 헤스 씨는 이날 만찬에서 아버지의 전쟁고아 구출 활동과 당시 인연을 회고했다. 현장에 설치된 소개 화면에는 헤스 대령이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를 훈련해 전투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1년 동안 F-51D 전투기로 250차례 전투 출격했다고 적혔다. 또 1951년 1·4 후퇴 당시 전쟁고아 1000여명을 군용 수송기로 제주도에 안전하게 옮긴 공적이 소개됐다.
강 차관으로부터 기념패를 받은 헤스 씨는 "아버지가 이 자리에서 직접 이 영예를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상도 의미가 있지만, 아버지가 진정한 보상으로 생각한 것은 부산에서 제주도로 피란한 전쟁고아들의 성공이었다"고 했다.
그는 2023년 제주도에서 아버지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해 당시 피란했던 고아 10명을 만난 일도 떠올렸다. 이 가운데 한 명이 휴대전화로 헤스 대령의 사진을 보여준 뒤 화면을 넘겨 제주 이송 직후 촬영된 1000여 전쟁고아의 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헤스 씨는 "매우 감정적인 순간이었다"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자신이 남긴 꿈과 영향 속에 기억되는 한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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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을 계승하려는 노력은 또 다른 가족의 '사람 찾기'로 이어졌다. 로버트 P. 모지어 씨는 1951~1952년 미국 해병대 사진사로 6·25전쟁을 취재했던 아버지 로버트 H. 모지어와 생활했던 한국 소년 '킴'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킴은 1935~1937년생으로 추정되며 1951년 겨울 당시 15세가량이었다. 강원도 홍천군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현재 북한 지역인 강원도 창도리 인근 피란민 캠프에서 모지어를 만났다. 이후 부대 보조원인 '하우스 보이(house boy)'로 일하며 사진 촬영을 돕는 등 모지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지어는 킴의 입양도 고려했지만, 당시 한국의 재건 과정에서 킴이 가족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1952년 7월께 부대가 철수하면서 헤어졌다. 아들 모지어 씨는 부친이 쓴 1953년 5월호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를 통해 이 사연을 접했다. 그는 "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형제"라며 1950년대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연결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킴을 끝내 찾지 못해도 이 이야기 자체가 내게는 선물"이라고도 했다.
모지어 씨는 이 사연을 공개한 뒤 또 다른 전쟁 인연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츠버그에 사는 91세 남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이 남성은 한국 소년 시절 통역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주해 핵물리학자가 됐다고 소개했다. 모지어 씨 자신도 유엔 국제경찰기동대(IPTF) 소속으로 보스니아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그는 이날 부친이 보관했던 전시 물품 가운데 북한 지역 주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올 때 사용하도록 배포된 통행증(Safe Conduct Pass) 원본을 강 차관에게 전달했다. 부친의 기사가 실린 1953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원본도 보훈부에 기증했다.
강 차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반드시 노력해서 빠른 시간 내에 킴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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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족의 사연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하자는 이날 논의에서도 나타났다. 강 차관은 만찬사에서 "오늘 콘퍼런스에서 세 가지를 다짐했다"며 76년 전 대한민국을 지킨 참전국에 감사하고, 22개 참전국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두 번째는 198만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 용기를 잊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 가치를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시작된 국제보훈콘퍼런스는 올해 21회째다. 미국에서는 처음 열렸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에는 미국과 튀르키예·프랑스·필리핀·태국 등 5개 참전국 보훈담당 고위급 인사와 참전용사, 역사 교사, 후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패널 세션에서는 5개국 보훈 관계자들이 보훈제도 사례를 공유했고, 특별 세션에서는 미국 건국 250주년과 한미동맹, 미래세대의 참전용사 희생 계승 방안을 다뤘다.
만찬은 돌아오지 못한 전쟁포로·실종자(POW/MIA)를 기리는 의식으로 시작됐다. 행사장에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빈 테이블과 빈 의자, 붉은 장미, 노란 리본, 뒤집힌 잔 등이 마련됐다. 강 차관은 참전용사 대표와 함께 빈 테이블의 촛불을 밝혔고, 참석자들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리며 묵념했다.
강 차관은 가슴에 단 성조기 배지를 가리키며 "마지막까지 그들을 찾겠다는 대한민국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7일 오마하에서 DPAA와 MOU를 체결하고, 한국전쟁 참전 미군 전쟁포로·실종자 가족 500여명이 참석하는 위로 행사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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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들의 희생이 남긴 현재의 의미도 이어졌다. 알렉스 웡 한화그룹 사장 겸 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CSO)는 이번 행사가 "한국 밖에서 열린 첫 국제보훈콘퍼런스"라며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참전용사들의 복무와 희생이 한반도와 세계에 '놀랍고 지속적인 유산(remarkable and enduring legacy)'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이후 한국이 지난 76년 동안 혁신과 번영을 이룬 것도 자유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이 남긴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웡 CSO는 한화가 전쟁 중 출범해 전후 한국 인프라 재건에 필요한 기초 물자를 공급했고, 이후 국방과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은 이날 행사를 후원했다.
존 틸러리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이사장(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참전용사의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토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적 경제·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오늘날의 대한민국 자체가 한국을 지킨 이들에 대한 '살아 있는 헌사(a living tribute)'라고 말했다.
틸러리 이사장은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전쟁에서 숨진 미군 3만6000여명과 미군 부대에서 함께 싸우다 숨진 카투사 7174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희생과 한미동맹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 콘퍼런스가 한국전쟁의 의미를 경험 세대를 넘어 젊은 세대에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강 차관도 "한미동맹은 76년 전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며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흔들릴 수 없는 강력한 동맹이라고 강조한 뒤 참석자들과 함께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