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경제 차르 전 中 총리 타계, 이상하게 조용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813010004675

글자크기

닫기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6. 08. 13. 15:48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향년 98세로 나름 장수
경제 개혁 주도 평가
아들 주윈라이는 中 경제 비판
clip20260813154644
12일 타계한 주룽지 전 중국 총리.향년 98세로 인생을 마감했다./신징바오.
중국의 경제 개혁을 주도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까지 성사시킨 경제 차르 별명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12일 타계했다. 향년 98세인 만큼 나름 장수했다고 볼 수 있다.

신징바오(新京報)를 비롯한 매체들의 13일 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1928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나 칭화(淸華)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주로 상하이(上海)에서 경제 관료로 활약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상하이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국무원 총리로 발탁돼 중국의 경제 전반을 책임졌다.

업적은 하나둘이 아니다. 2001년에 성사된 중국의 WTO 가입을 역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세계 무역 체제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이후 중국의 대외무역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외에 그는 대형 국유기업들을 통·폐합, 경쟁력을 높이는 등 경제 체질을 바꾸는 국유기업 개혁에도 집중해 크게 성공했다.

그는 지금은 상전벽해의 상징으로 불리는 상하이 푸둥(浦東) 지역 개발의 주역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상하이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황푸(黃浦)강 동쪽의 미개발 지역이었던 푸둥 개발을 적극 추진해 성공 신화를 쓴 것이다. 이후 푸둥은 금융과 비즈니스 중심지로 탈바꿈해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됐다.

그는 거침없는 화법과 강한 개성, 카리스마로도 유명했다. 1998년 총리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에 놓인 것이 지뢰밭이든 낭떠러지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실을 상기하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부패 척결 의지는 "관 100개를 준비해 99개는 부패 관리들에게, 하나는 나 자신에게 남겨두겠다"고 말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 의지는 현재 중국의 관료 부패가 여전히 대단한 현실을 감안할 경우 결론적으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고 해야 한다.

그는 자녀 교육도 상당히 잘했다고 할 수 있다. 장남 주윈라이(朱雲來·69))가 국영기관인 중국국제금융공사 회장으로 오랜 동안 활약했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주 전 회장은 중국의 정부, 기업, 민간의 이른바 트리플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600% 가까이에 이른다는 주장을 해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부전자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타계 소식은 이상하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관영 매체들도 조용히 팩트만 전할 뿐이다. 아마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의지가 전직 당정 최고 지도자들의 각종 행보를 조용히 지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인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