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으로 다시 읽은 150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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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용 서울대 미대 교수가 펴낸 '돈의 미술사'는 이처럼 미술의 '하얀 벽 뒤편'을 들여다본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19세기 후반부터 금융과 글로벌 갤러리, 국가가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오늘날까지 약 150년의 미술사를 '가격'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다. 예술가의 천재성과 작품의 혁신에 집중했던 기존 미술사에서 한발 물러나 화상·컬렉터·비평가·미술관·경매사·금융이 예술의 가치를 만들어온 과정을 추적한다.
출발점은 인상주의다. 오늘날 미술사의 중심에 있는 모네와 르누아르, 피사로 등도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화상 폴 뒤랑뤼엘은 이들의 작품을 대량 매입하고 개인전과 해외 전시를 조직했다. 서로 다른 작가를 '인상주의'라는 이름 아래 묶어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 미국까지 작품을 확산시켰다. 작가의 이름을 브랜드화하고 작품의 노출과 공급을 관리하는 방식은 오늘날 메가 갤러리와 블루칩 작가 체계의 원형이 됐다.
저자는 뒤랑뤼엘의 역할을 단순한 시장 논리의 침투로만 보지 않는다. 시장은 예술가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고 작품을 널리 유통시키는 힘이었지만, 동시에 창작을 시장의 요구에 맞추는 구조를 만들었다. 예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조건이 동시에 예술을 상품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술의 가치 형성에는 미술관과 비평, 국가와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누가 예술이라고 선언하는가'가 중요해진 시대를 상징한다. 워홀에 이르면 작가의 이름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 작품의 물질적 특성보다 '워홀'이라는 이름이 상징자본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를 둘러싼 이야기도 미술과 자본의 관계를 보여준다. 폴록의 회화가 개인의 자유와 창작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미술관과 재단, 금융자본뿐 아니라 냉전기의 문화정책과 국제정치가 얽혀 있었다. 예술이 체제에 저항하는 듯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특정한 정치·경제 체제의 문화적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컬렉터와 경매회사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경매에서 형성된 기록적인 가격은 다음 거래의 기준이 되고, 높은 가격은 다시 작가의 명성과 미술사적 중요성을 강화한다. 2019년 소더비에서 모네의 '건초더미'가 약 1억1000만 달러에 낙찰되고, 2024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이 624만 달러에 거래된 사례는 물질적 가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술 가격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금융화된 미술의 현실을 짚는다. 스위스 제네바 등의 프리포트에서는 작품을 감상하지 않은 채 보관하면서 소유권만 거래할 수 있다. 미술품이 감상의 대상에서 자산관리와 투자 대상으로 이동한 것이다. 글로벌 아트페어와 메가 갤러리, 명품기업의 미술관, 중동 국가의 문화 투자 등이 맞물리면서 자본은 작품의 가격뿐 아니라 무엇을 전시하고 누구를 기억할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시장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시장에 의해 만들어진 판단이 어떻게 미술사적 가치로 번역되고 제도화되는가'다. 가격이 작품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것인지, 중요한 작품이라는 믿음이 가격을 만드는 것인지도 되묻는다.
심상용 교수는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미술관장을 지냈으며 '시장미술의 탄생', '속도의 예술', '천재는 죽었다' 등을 통해 현대미술의 제도와 시장을 비판적으로 다뤄왔다.
심 교수의 특별 강연과 북토크는 오는 30일 오후 2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지하 1층 세마홀에서 열린다. '돈의 미술사'는 가격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이해한 뒤 다시 작품 앞에 서게 한다. 비싼 작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다고 믿게 됐는지를 묻는 것에서 예술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시작된다.
구텐베르크. 44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