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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네팔의 빙하가 무너지자 지구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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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8. 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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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FLOODS/ <YONHAP NO-4854> (REUTERS)
지난 29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 사원에서 열린 화장 의식에서 이번 돌발 홍수와 산사태로 숨진 로한 슈레스타(25)의 어머니 수미트라 씨가 유족의 위로를 받으며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정리나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지난 26일(현지시간) 오전 지구 반대편 미국의 지진계가 흔들렸다. 발생지는 네팔, 규모 5.2. 하지만 지진은 아니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분석해 보니 지진파가 붕괴에 앞서 발생한 게 아니라, 붕괴 자체가 지진파를 만들었다. 땅이 흔들려 산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산이 무너져 지구가 흔들렸던 것이다.

무너진 것은 해발 7227m 랑탕 리룽의 빙하였다. '빙하의 계곡'이라 불리는 랑탕 계곡의 주봉이다. 빙하를 받치던 암반이 꺼지면서 거대한 얼음과 바위가 국경 지대의 렌데콜라로 쏟아졌고, 물살은 보테코시강을 거쳐 트리술리강으로 내달렸다. 트리술리강 수위는 30분 만에 9m 치솟았다. 72㎞ 구간의 마을 수십 곳이 휩쓸렸고, 네팔에서만 사망자가 800명에 육박하고 실종자는 2400명이 넘는다. 집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재난은 국경을 가리지 않아서, 중국 티베트 쪽에서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됐고, 240㎞ 넘게 떨어진 인도에서도 이번 네팔 대홍수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발견됐다. 실종된 외국인 명단에는 한국인도 있다.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이다. 지난해 7월 라수와가디에서는 빙하호가 터지며 네팔과 중국을 잇던 '우정의 다리'를 집어삼켰고, 재작년에는 인근에서 얼음·암석 사태가 발생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에는 랑탕 마을 전체가 거대한 눈사태에 묻히며 주민과 트레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피땀으로 10년에 걸쳐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10년 만에 같은 산자락이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과학자들은 이 참혹한 반복에 '새로운 일상(New Normal·뉴노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네팔은 지난 30년 사이 설산 빙하의 3분의 1을 잃었다. 최근 10년간 빙하가 녹아내린 속도는 이전 10년보다 65%나 빨라졌다. '제3의 극지'라 불리는 힌두쿠시히말라야는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내리면 얼음뿐 아니라 산맥의 뼈대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빙하 재해를 오래 연구해온 댄 슈가 캘커리대 교수는 "기후변화가 이런 재앙을 더 빈번하게 만들 것이란 점은 100% 확실하다"고 단언한다.

APTOPIX Nepal ... <YONHAP NO-1472> (AP Photo/Rajesh Kumar Singh)
29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데비가트 주민들이 급류와 토석류로 파손된 주택에서 쓸 만한 세간살이를 꺼내 나르고 있다/AP 연합뉴스
이 재앙을 겪은 네팔의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세계 전체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히말라야를 달군 탄소는 결코 랑탕의 굴뚝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천 ㎞ 떨어진 산업국들의 공장과 발전소,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뿜어져 나와 이 만년설 위에 차곡차곡 쌓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가혹한 청구서는 고스란히 트리슐리 강가의 힘없는 산간 마을 주민들에게 날아들었다. 기후재앙이 여느 사회적 참사와 같은 이유다. 국경 너머에 그 원인들이 켜켜이 쌓이면, 피해는 네팔의 계곡에 불평등하게 쏟아진다. 배출하지 않은 사람들이 배출의 값을 목숨으로 치른다.

그 산업국들의 명단에 한국의 이름이 빠질 리 없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0위권의 탄소 다배출국이다. 히말라야를 데운 탄소 어딘가에 분명 우리의 몫이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인들은 이 계곡을 유독 사랑했다. 랑탕은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와 더불어 한국 트레커들이 가장 즐겨 찾던 곳이다. 이번 참사에서 한국은 두 개의 명단에 걸쳐 있다. 계곡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 그리고 계곡을 달군 나라들의 명단. 우리는 양쪽 모두에 서 있다.

더 두려운 현실은 이번 사태가 거대한 재앙의 '예고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힌두쿠시히말라야의 만년설은 갠지스·인더스·메콩·양쯔 등 아시아 주요 강 10개의 발원지다. 아시아 인구 20억명의 식수와 농업용수가 이 빙하에 달려있다. 빙하가 무너지고 급격히 녹아내리는 동안에도 또 홍수가 덮칠 것이고, 그것이 지나간 뒤에는 극심한 가뭄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랑탕에서 무너져 내린 것은 단순한 산봉우리 하나가 아니라, 인류가 마주해야 할 무서운 미래의 첫 조각이다.

미국과 독일의 지진계는 수천 ㎞ 밖에서도 히말라야의 붕괴를 포착해냈다. 기계는 그렇게 예민하다. 정작 둔감한 쪽은 사람이다. 히말라야에서 산이 무너지고, 그 진동이 지구 반대편까지 닿아도, 배출량 순위표 꼭대기에 선 국가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아마 며칠간의 의례적인 애도와 구호 성금을 보내고는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 잊을 것이다. 실제로 그래왔다. 역사상 가장 많은 탄소를 뿜어온 나라의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단에서 기후변화를 "세계에 자행된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 불렀고, 파리기후협정을 두 번 탈퇴했다. 미국이 두 번째로 협정을 떠난 것이 바로 불과 지난 1월이다.

이 재앙에는 최루탄 냄새도, 총성도 없다. 그래서 무감각해지기 쉽고, 바로 그 무감각이 재난의 공범이 된다. 기계가 먼저 기록해 낸 지구의 흔들림을, 이제는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양심으로 기록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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