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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만든 예술, 솔 르윗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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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10. 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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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월 드로잉·구조물·회화 등 45점…지시문 따라 매번 새롭게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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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미국 개념미술의 거장 솔 르윗(1928~2007)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개인전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르윗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월 드로잉 13점을 비롯해 구조물, 회화, 사진, 판화, 아카이브 등 45점을 선보인다. 솔 르윗 재단과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과의 협업으로 마련된 전시다.

르윗은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규칙에 주목한 작가다. 1967년 발표한 '개념미술에 관한 문단'에서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라고 선언한 것도 이런 작업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전시장에서는 하나의 기본 형태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합되고 반복되면서 수많은 변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어떤 규칙을 가지고 만들어졌을까'를 되묻게 하는 것이 르윗 작업의 핵심이다.

솔 르윗 작가
솔 르윗 작가. Sol LeWitt working on Wall Drawing #66, at the Guggenheim Museum, New York, 1971.ⓒ 2026 The LeWitt Estate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월 드로잉이다. 르윗은 벽 자체를 캔버스로 삼아 선과 도형을 그렸으며,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지웠다. 1968년 시작된 월 드로잉은 생전에 1300점 이상 제작됐다. 작품은 작가가 남긴 지시문에 따라 현장에서 새롭게 구현된다. 선의 위치와 방향, 길이, 색 등을 언어로 설명한 지시문은 일종의 악보처럼 작품을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다시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술관 관계자는 "르윗의 월 드로잉은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지시문이 중요하다"며 "같은 지시문이라도 공간과 실행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르윗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 월 드로잉부터 후기 작업까지 르윗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초기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엄격한 격자와 기하학적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느슨해진다. 직선과 곡선, 규칙과 비규칙의 관계를 탐구한 후기 작업에서는 손의 움직임이나 우연히 만들어지는 형태, 자연에서 발견되는 이미지까지 작업에 끌어들였다. 규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규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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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구조물에서는 정육면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르윗은 조각이라는 말보다 '구조'라는 표현을 선호했으며, 감정이나 상징성이 개입하기 어려운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로서 큐브에 주목했다. 대표작 '미완성 열린 큐브 6/20' 등을 통해 단순한 형태가 반복과 조합에 따라 어떻게 다른 구조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자료도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개념미술에 관한 글의 초안과 함께 지도, 사진 등을 통해 르윗이 작품의 제작뿐 아니라 유통과 소유 방식까지 어떻게 질문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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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르윗 재단의 관계자들과 국내 미술 전공 학생 23명이 참여해 작가의 지시문을 바탕으로 완성한 대형 월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르윗은 생전에도 현지 학생들과 협업해 월 드로잉을 제작했는데, 이번 작업 역시 작가가 남긴 규칙을 여러 사람이 해석하고 실행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전시 말미에는 한 사람이 그은 선을 다음 사람이 최대한 가깝게 따라 그리는 '따라 그리는 선' 작업도 소개된다. 같은 지시를 따르지만 참여자가 바뀔 때마다 미세한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가 축적되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 르윗의 예술은 정해진 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가 규칙과 사람, 공간을 거치며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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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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