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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방향은 일관되게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자사주의 취득·처분을 비롯한 경영권 방어수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 등을 통해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민간 대기업에서는 지배주주가 경영에 깊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지배주주의 권한 제한은 상당 부분 경영권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물론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막고 일반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견제 장치를 강화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경영권 안정 장치는 마련하지 않는 데 있다.
기업가정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다. 기업가는 다른 사람들이 성공을 확신하지 못할 때 자신의 판단을 믿고 장기간 자본과 인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오늘 내린 투자 결정의 성과가 10년 뒤에 나타나는 동안 언제든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면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경영권의 안정은 단순히 대주주에게 주는 특혜가 아니라 장기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제도적 기반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험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이지만 동시에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허용해 왔다.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시차임기제 이사회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차등의결권은 창업자가 외부자본을 대규모로 받아 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알파벳, 메타, 팔란티어를 비롯한 미국의 신흥 대기업에서 창업자가 장기간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며 과감한 위험투자를 계속할 수 있었던 제도적 환경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오늘날 인공지능, 우주, 플랫폼, 반도체 등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화두를 미국의 기업가들이 잇달아 선점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기업가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전통적으로 주주 평등과 인수시장의 규율을 중시하여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사회가 주주의 판단을 방해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창업자의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장치에도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국은 지금도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 기반을 바탕으로 수많은 혁신기업을 만들어 내는 창업 강국이다. 문제는 그렇게 태어난 기업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영국에 남기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영국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혁신기업들이 과감한 위험투자를 계속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영국은 제도를 고치기 시작했다. 과거 런던증시의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허용하지 않던 차등의결권을 창업자 기업에 허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상장제도도 더욱 유연하게 개편했다. 영국 정부가 혁신기업 정책의 목표를 'start, scale and stay in the UK'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국은 뒤늦게나마 "당신에게 돈은 투자하겠지만 경영권을 지킬 장치는 주지 않겠다"고 하는 제도에서, "외부자본을 받더라도 창업자가 장기적인 비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통제권을 보장하겠다"는 제도로 선회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의 목적은 경영자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데 있지 않다. 나쁜 경영자는 견제하되 좋은 기업가가 장기적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지배구조다. 주주에게 경영자를 바꿀 권리가 필요하다면, 장기적인 가치를 만들어 온 경영자에게도 적대적 인수와 단기적인 자본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합리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고려아연 사태를 어느 편이 이기느냐의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기업가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외부자본을 받아 성장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발전시켜 왔고, 한때 이에 인색했던 영국마저 혁신기업을 자국에서 성장시키기 위해 경영권 안정장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주주권 강화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하나씩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은 특정 대주주의 경영권이 아니다. 그 경영권을 기반으로 장기간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이다.
강원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