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 사이로 스며든 어린 시절의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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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지 자체가 금속을 품을 수 있을까. 추석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서울 안국동의 한옥 전시장 소허당에서 만난 김경신 작가의 금속공예 작품 앞에서 품은 물음이었다. 금속처럼 빛나는 표면의 바탕이 한지라는 설명을 듣자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부드럽고 쉽게 구겨질 듯한 한지가 단단한 형태를 이루고, 그 위에서 보석과도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소허당 내 작은 한옥의 방을 따라 작품을 살피는 동안 색은 빛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도 작품을 금속으로 여겼다가 한지로 만들었다는 김 작가의 설명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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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형태 위에 금속의 빛을 입히다
김 작가는 여러 겹 쌓은 후 쌀풀로 붙여 단단해진 한지를 조각해 형태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일부 작품에서는 한지 표면에 금속을 입힌 뒤 특유의 색을 표현한다. 금속으로 형태를 만들고 한지를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한지에서 출발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공예와 과학을 함께 탐구한 시간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독일 포르츠하임 응용과학대학교(FH Pforzheim)에서 장신구와 조각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 중 화학과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재료와 표면에 관한 탐구를 넓혔다고 한다.
김 작가의 작품집에는 1997년 '문양이 있는 예술작품 한지와 금속의 전기분해 기법'이 특허 항목으로 실려 있다. 작품집은 이 기술을 포함해 세 건의 특허를 소개한다. 한지와 금속의 만남이 조형적 발상에서 출발해 제작 방법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전시장에 놓인 모든 작품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김 작가는 한지와 금속을 결합한 작품 외에도 한지만으로 만든 작품, 옻칠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지나면서도 작품을 잇는 중심에는 빛과 색이 있다.
독일에서 다시 떠오른 계동 한옥의 아침
그 빛의 기억은 북촌 계동의 한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을 깨우던 아침, 창호지를 통과한 햇빛이 방 안을 밝히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일어나기 싫었던 마음과 달리 방으로 들어오던 빛은 오래 남았다. 독일에서 귀금속을 공부할 때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고 한다.
한옥의 창호지뿐 아니라 나무 창살의 격자와 단청의 색도 그의 작업에 스며들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한지 브로치는 오랫동안 이어 온 주제다. 어린 시절 보았던 빛과 우리말의 형태가 손에 쥘 수 있는 장신구가 되고, 다시 공간을 채우는 조형 작품으로 넓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허당은 작품을 보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창호지로 들어오는 빛을 기억하는 작가의 작품이 다시 한옥 안에 놓였다. 관람객은 작품의 표면뿐 아니라 그것을 낳은 공간의 분위기까지 함께 마주한다.
한지를 향한 경의, 전시장에서 이어진 대화
한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바탕이자 오랜 기록을 전해 온 재료다. 김 작가는 여기에 조각과 금속, 옻칠의 가능성을 더했다. 작품이 문화유산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오래된 것을 그대로 재현해서라기보다 익숙한 재료 안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빛을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최진용 전 문화관광부 국장은 한지와 금속을 결합한 김 작가의 기법을 높이 평가하며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더 많은 사람이 김 작가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볼 수 있도록 보다 더 큰 전시공간에서도 소개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는 이날 작품을 본 많은 이들의 공통된 감상과 기대다.
김 작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9년 제네바 국제발명박람회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이력은 한지 장신구에서 출발해 여러 재료와 공간으로 작업을 넓혀 온 시간을 말해준다.
이날 김 작가는 초대한 관람객을 위해 직접 만든 샌드위치도 내놓았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표면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금속인 줄 알았던 빛 아래 한지가 있었다. 북촌의 한옥에서 보았던 아침 햇빛이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색과 형태로 전시장에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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