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필 탄신 120주년 맞아 간송미술관서 ‘상서, 컬렉션을 읽다’展 작품 이름·재료·전래 과정 기록한 ‘상서’ 61점과 유물 45점 선보여
보화각 2층 전시장 전경 2 ⓒ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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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 컬렉션을 읽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 보화각 2층 전시장 전경. /간송미술문화재단
명작의 가치는 작품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가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손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기록도 작품의 역사를 완성한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자신이 지킨 문화유산의 이야기를 오동나무 상자에 남겼다. 상자 위 먹글씨로 기록된 '상서(箱書)'가 10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간송 컬렉션의 형성과정을 증언한다.
간송미술관은 전형필 탄신 12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특별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를 열고 있다. 2024년 재개관 이후 이어온 3개년 기획전의 마지막 전시로, 작품보다 한 걸음 뒤에 있던 '상자와 기록'에 초점을 맞췄다. 상서 61점과 유물 45점 등 모두 106점을 선보이고 있다.
'상서'에는 작품의 작가와 제목뿐 아니라 제작 기법과 재료, 전래 과정, 소장 경위, 감식평 등이 담겼다. 간송의 스승인 오세창을 비롯해 이도영·이한복·나가오 우잔 등 당대 감식가들이 직접 필적을 남겼다.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오동나무 상자는 약 700건이며, 이 가운데 상서가 확인된 것은 약 258건이다.
상서는 작품의 '이력서'와 같다. 김시의 '선록완월'은 상서에 기록된 옛 이름을 통해 기존에 불리던 '신선도'에서 작품의 본래 명칭을 되찾았다. 이징의 '고사한거'에서는 금가루로 산수화를 그렸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만 들여다봐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가 상자에 남아 있는 것이다.
4. 김홍도-낭원투도 ⓒ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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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낭원투도'. /간송미술문화재단
감식가의 평가도 생생하다. 김홍도의 '낭원투도'에는 오세창이 작품을 감식한 뒤 '근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추사 김정희의 '차호호공' 상서에는 작품에 대한 감평과 함께 간송을 향한 오세창의 인간적인 소회도 담겼다.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와 전승 과정도 상서를 통해 드러난다. 안중식의 '한산충무'에는 오세창의 찬문과 제자 이한복의 상서가 함께 남아 있다. 작가와 스승, 제자로 이어지는 근대 화단의 관계망이 한 작품 안에 겹쳐진다.
4-1. 오세창-김단원동방만천투도도(김홍도-낭원투도 상서) ⓒ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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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의 '김단원동방만천투도도(김홍도의 '낭원투도' 상서)'. /간송미술문화재단
전형필은 유물을 사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유물 크기에 맞춰 오동나무 상자를 주문 제작하고, 감식가의 확인을 거쳐 작품의 이름과 내력을 기록했다. 상자 하나를 만드는 데 당시 쌀 수십 가마니에 해당하는 비용을 들이기도 했다. 수집과 감식, 기록과 보존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것이다.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님은 유물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름과 내력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 문화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셨다"며 상서를 "먼 훗날의 우리에게 남긴 조용한 편지"라고 표현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도 이번 전시에 대해 "상자에 남겨진 짧은 글들은 수집과 감식, 보존의 전 과정을 압축한 일차 자료"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화각 앞에는 조선시대 석호상 한 쌍이 새롭게 자리했다. 그동안 정문을 지키던 중국 석사자상을 대신한다. 이 석호상은 1935년 일본인 수장가 와타나베 가문의 소장품으로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출품됐고, 전형필이 1200원에 낙찰받았다. 90여 년 전 간송이 지켜낸 조선의 석조 문화유산이 이제는 보화각을 찾는 관람객을 맞는 새로운 문지기가 됐다. 이번 전시는 12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