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평사원, 일 기린맥주 과장 등
밑바닥, 남의 밑에서 사회 경험 쌓아
2020년 3.6조 자구안 빠르게 졸업 뒤
SK실트론 품고 풀라인업 구축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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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에 오른 지 10년. 그 과정은 굴곡졌다. 취임 4년 만인 2020년 봄, 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몰려 국책은행에 손을 벌렸다. 두산타워와 알짜 계열사를 내다 파는 뼈를 깎는 결단 끝에 3조원 넘게 마련했고, 23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를 벗어났다. 그 사이 키운 전자BG의 AI 반도체 소재, 새로 사들인 반도체 테스트 회사, 미국 AI 데이터센터로 향하는 가스터빈은 지금 두산을 떠받치는 축이 됐다. 지난 6월엔 서울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선 글로벌 시총 1위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던진 시구 공을 타석에 선 박정원 두산 베어스 구단주가 쳐냈다. 황 CEO는 '폭투'라며 웃었고, 둘은 함께 포옹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엔비디아와 두산의 전폭적 AI 협력이 시작됐다. 두 달이 채 안 된 7월 31일, 두산은 대학 동문 최태원 회장의 SK로부터 국내유일 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 SK실트론을 사기로 결의했다. 박정원 회장이 만든 인연들이 두산과 'AI' 를 연결 시킨 장면들이다.
◇ 재계 最古 기업 장손… 박정원의 사람들
박 회장은 1962년생으로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창업주 박승직의 증손자이자, 두산을 근대 기업으로 키운 박두병 초대 회장의 장손이다.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81학번)를 졸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고려대 동문이며 오세훈 서울시장과는 대일고부터 고려대까지 동문이다. LS와는 사돈이다. 박 회장의 장녀는 2017년 구자열 LS 의장의 장남 구동휘 LS MnM 대표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산가에는 '눈칫밥 이론'이라 불리는 가풍이 있다. 대주주 집안 자녀라도 밑바닥부터, 남의 밑에서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원 회장은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1989년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1992년에는 일본 기린맥주에서 1년간 과장으로 일했다. 가풍을 이어 눈칫밥을 먹으며 경험을 쌓은 셈이다. 이후 동양맥주·오비맥주 상무, ㈜두산 관리본부 전무를 거쳐 상사BG 대표를 맡았다. 2005년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부회장, 2007년 ㈜두산 부회장, 2009년 두산건설 회장을 거쳐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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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6년 3월 취임식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100년을 위한 사업을 벌여야 하는 게 박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다. 취임 첫해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과 두산건설의 HRSG 사업을 매각했고, 그해 11월에는 한 차례 무산됐던 두산밥캣 상장을 마무리했다. 숙부 박용만 전 회장 시절인 2015년 따낸 시내면세점 특허로 이듬해 5월 서울 동대문에 '두타면세점'을 열었지만 적자가 이어지자 2019년 10월 특허를 반납하기도 했다. ㈜두산의 연료전지와 소재 사업은 떼어내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로 상장시켰다. 진짜 고비는 2020년 찾아왔다. 두산중공업이 4조원이 넘는 단기차입금을 갚기 어려워졌다.
두산타워, 클럽모우CC, 두산솔루스와 두산 모트롤BG,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을 매각하며 3조원 넘게 손에 쥐었다. 박 회장은 사재를 털었고 임원들과 함께 임금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렇게 2022년, 박정원 회장의 두산은 예정 보다 1년 이상 채권단 조기 졸업에 성공했다. 테스나는 이후 두산그룹 미래사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축의 출발점이 됐다. 2026년 7월 31일 ㈜두산 이사회는 SK㈜가 가진 SK실트론 지분 70.6%를 약 2조3000억원에 사는 계약을 결의했다. 이로써 두산은 웨이퍼(SK실트론) 후공정과 테스트(두산테스나) 전자소재(CCL)로 이어지는 반도체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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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은 오너 형제들이 차례로 그룹을 이끄는 '형제경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회장직을 형제끼리 순번대로 물려주는 관행과, 그룹 지배권·계열사 지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5년 박용오 전 회장과 동생 박용성 전 회장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결정적 계기였다. 두산은 창업 2세인 박두병 초대회장의 아들들이 차례로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 전통을 유지해 왔다. 박용곤 명예회장에 이어 박용오 전 회장, 박용성 전 회장, 박용현 전 회장, 박용만 전 회장으로 회장직이 이어졌다. 그러나 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 박용성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는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했다. 갈등은 단순히 누가 회장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룹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경영할 것인지, 각자 계열사를 나눠 독립적으로 경영할 것인지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2016년 박용만 전 회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조카인 박정원 회장을 후임으로 추천했고 박정원 회장은 창업 4세 총수 시대를 열었다. 이후 회장직을 형제에게 다시 넘기지 않고 장기간 그룹을 이끌고 있다.
◇좌절에도 접지 않은 네팔
박 회장의 침통한 얼굴을 보게 된 건 지난 8월이다. 네팔에서 발생한 홍수가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을 휩쓸어 직원 6명이 실종됐다. 박 회장은 즉각 사내게시판에 '직원 안전확인과 무사귀환을 최우선으로 삼고 전사적 역량을 모으겠다'고 했고 40명 규모 비상대책본부를 꾸렸다. 그룹차원에서 500만달러 긴급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과 직접 네팔 현지를 찾아 실종자 수색·구조와 사고 수습을 지원했다. 현지에 고립됐다 구조된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한국인 10명은 무사히 귀국했지만 실종자 9명에 대한 수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