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재미사마, 11월 5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서 정기공연
상실을 안고 작은 간이역에 모인 세 사람…기다림과 살아내는 삶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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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재미사마가 오는 5일부터 8일까지 서울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선보이는 연극 '풍경역, 오래된 기적'은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창단 공연 '나는 기다립니다'를 무대에 올린 극단의 두 번째 정기공연이다. 전작에서 다뤘던 '기다림'이라는 화두를 상실과 생존, 기적의 의미로 확장한다. 신미정이 극본을 쓰고 극단 대표 서하경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풍경역은 이제 한 달에 한 번 관광열차만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책방과 사랑방을 겸하는 이곳을 지키는 정성은 퇴직 교사다. 아이를 잃은 뒤 남편과 헤어졌고, 지금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낮에는 건설 현장에서 신호수로 일하고 밤이면 책방을 지킨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정성에게 상실은 어느 날 겪고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일상 속에 오래 머무는 현실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취업 면접장에서 울음을 터뜨린 청년 매진이 막차를 잘못 타고 풍경역에 도착한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정작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진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에요"라는 말에는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느끼는 좌절이 담겨 있다. 정성이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안고 있다면 매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앞에서 흔들린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이별을 겪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기대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일 역시 한 사람에게는 절실한 상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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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정성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가 있고, 매진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미래가 있다. 소연에게는 떠나보낸 어머니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다. 정성의 상실은 지나간 사건이면서도 여전히 현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매진의 좌절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소연은 끝난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처지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감정들이 풍경역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마주한다.
세 사람이 함께한다고 해서 각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은 매진의 미래를 대신 결정할 수 없고, 매진 역시 정성이 겪은 상실을 되돌릴 수 없다. 소연이 어머니를 향해 품은 감정에도 누군가가 대신 내려줄 답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같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는다. 상대방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머무는 일은 가능하다. 서로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잠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세 사람의 만남은 의미를 갖는다.
작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슬픔과 웃음이 함께 놓여 있다는 점이다. 아이를 잃은 여자와 면접장에서 무너진 청년, 어머니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여자의 만남은 무거운 사연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밥과 막걸리, 시시한 농담이 있다. 웃음이 슬픔을 지워주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을 품은 사람도 웃을 수 있다. 소연의 대사 "웃기지도 않은데 웃어. 그건 생존해 내는 거야"는 이런 정서를 압축한다. 웃음은 반드시 행복의 표시가 아니다. 어떤 날에는 하루를 견디기 위해 짓는 표정이기도 하다.
풍경역은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 떠날 수 있는 작은 정거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장소는 아니다. 기차가 오지 않는 날이 훨씬 많은 역에서 정성은 날마다 책방을 지킨다. 관광열차가 잠시 멈추는 날과 관계없이 그의 일상은 이어지고,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책방이 사랑방을 겸한다는 설정도 중요하다. 혼자 책을 읽을 수도, 다른 사람과 마주 앉을 수도 있는 곳이다. 기차가 드물게 찾아오는 역에서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풍경역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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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목은 인물들의 사연과도 연결된다. 정성에게 풍경역은 떠난 사람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장소이고, 매진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도착한 낯선 공간이다. 소연 역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남은 감정을 품고 이곳에 모인다. 세 사람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더라도 각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억과 기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마주하는 일일 수 있다.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이 제목의 중의성과 맞닿아 있다.
이런 중의성은 극단의 전작 '나는 기다립니다'와도 연결된다. 제작진은 이번 공연을 전작의 연장선, 일종의 시즌2로 설명한다. 그러나 기다림은 언제나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기다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으며, 어떤 일은 차라리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돌아올 수 없는 아이를 향한 정성의 마음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매진의 마음은 같은 '기다림'이라는 말로 묶이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작품은 무엇을 기다리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다리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제작진은 이 작품이 고통스러운 삶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응원하기 위한 연극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우울과 무기력, 분노와 질투, 후회와 초라함이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위로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농담을 건네는 시간은 상처를 없애지는 못해도 혼자 감당해야 할 시간을 잠시 나눌 수 있게 한다. "봄이라고 꽃들이 모두 한꺼번에 피지는 않아요"라는 대사처럼 상실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서하경이 강조하는 것은 실패와 외로움, 후회를 안고도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다. 흔히 기적은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극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작품이 말하는 기적은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과 마주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이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아이를 잃고도 어머니를 돌보는 정성의 일상, 미래가 막막한 매진의 좌절, 어머니를 향한 양가적인 마음을 지닌 소연의 삶은 그 질문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상처가 사라지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작품은 기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기적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보다, 기적이 오지 않는 날에도 자신의 삶을 계속할 수 있는 마음인지 모른다. '풍경역, 오래된 기적'은 그 오래되고도 어려운 질문을 작은 간이역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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