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의 황금'은 올해부터 2029년까지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할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가 이제야 국립오페라단을 통해 한국에서 전막 공연된다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적후발(積厚發)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라이브 피드 연출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음악과 드라마의 균형적인 결합이라는 오페라의 오래된 명제를 놓고 볼 때, 두드러진 시각 효과가 종종 음악을 가리곤 했기 때문이다.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오페라 '라인의 황금'에서도 이 라이브캠이 등장해 시각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악극을 선보였다. 라이브캠을 썼던 기존 오페라들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순히 반영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라이브캠과 스크린이 인물의 내면 심리나 환각, 억압된 무의식 등을 그려내며 진일보한 활용법을 보여줬다. 라이브캠을 이같이 활용한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봐도 좋을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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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로렌조 피오로니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연출을 맡아 기발하고 참신한 무대로 호평받았다. 그런데 이번 '라인의 황금'에서는 연출가의 독창적인 개성이 과하게 투영된 나머지, 작품의 균형을 넘어서는 과유불급의 아쉬움이 나타났다. 작품에서 라인강이나 발할라가 들어선 대초원 등등의 공간을 모두 연출의 해석에 따라 실내로 변경했기 때문에 바그너가 묘사했던 자연의 음악적 풍경과는 괴리가 느껴졌다. 무대축전극(Buhnenfestspiel)으로 지칭하면서 '링 시리즈'에 대해 바그너가 지향했던 것은 제의와도 같은 완벽한 몰입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독일을 중심으로 몰입을 깨뜨리는 브레히트식 소외 장치(라이브캠 등등)를 동원한 바그너 오페라 연출이 눈에 많이 띈다. 이번 '라인의 황금'에서도 라이브 피드 자체의 활용은 흥미로웠으나, 바그너주의가 지향하는 몰입의 정서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연출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4장, 대지의 여신 에르다에게 갑자기 가체를 씌우고 한복을 입혀 웅녀를 표현하고자 한 시도는 단군신화 속 '웅녀'라는 상징을 깊이 있게 해석하기보다, 키치한 시각적 도구로 소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문화적 맥락을 탈락시킨 채 표피적으로 전유한 것은 서구 연출자의 자의적 시선으로 재조합한 시각적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
지휘를 맡은 로타 쾨닉스는 이번 오페라에 상당히 영리하게 접근했다. 연주를 맡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강점과 한계를 명확히 파악해 이끌었다. 이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극의 서사를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뛰어넘어 악극의 유기적인 한 축을 담당하는 나름의 선방을 했다. 1장 도입부 라인강의 묘사나 발할라 등장과 입성 등에서 현악의 서정적 밀도는 많이 떨어졌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야 할 곳에서는 합이 정교하게 맞지는 않았다. 오히려 목관과 금관 등 관악 파트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3장 니벨하임 장면에서 튜바와 트롬본 등 중저음의 금관악기군은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 세계를 묵직하게 표현했고 '마법투구(타른헬름) 동기'에서는 둔갑의 선율을 둔탁하면서도 신비롭게 들려주었다. 4년 뒤 다가올 바그너 '링 시리즈'의 완주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게도 자체 역량을 한 차원 확장하는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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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이날 가장 빛났던 것은 역시 우리 성악가들일 것이다. 알베리히 역할의 사무엘 윤은 명불허전이었고, 프리카 역할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또한 쉽지 않은 음역대의 배역을 또렷한 딕션과 좋은 음색으로 훌륭하게 소화했다. 두 거인 형제를 노래한 베이스바리톤 류지상과 베이스 김대영 또한 중후한 음색으로 맡은바에 충실했고, 미메를 맡은 테너 강도호도 뛰어난 연기와 예민한 음색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에르다 역할의 메조소프라노 이단비는 집중이 쉽지 않았을 설정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저음역의 짙은 울림으로 극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중심을 잡았다.
프로이트는 예술을 억압된 소망을 안전하고 숭고하게 충족시켜 주는 쾌락의 장치로 보았다. 이번 프로덕션은 바그너 고유의 미학적 깊이를 조명하거나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보다, 연출가의 주관적 해석과 서사를 전면에 배치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연출가의 강한 사유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번 무대는 작품 본연의 무게감과 연출적 시도 사이에서 여운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