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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획 시리즈] 아! 3500 대한독립군단이여! <3회. 연해주에 남은 독립운동의 흔적>

[단독기획 시리즈] 아! 3500 대한독립군단이여! <3회. 연해주에 남은 독립운동의 흔적>

기사승인 2016. 07. 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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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黑龍江)성 쑤이펀하(綏芬河)시에서 하룻밤을 묵은 자유시참변 추모기행단은 6월 26일 아침 러시아로 넘어가기 위해 쑤이펀하 세관으로 향했다. 쑤이펀하 세관으로 향하는 길은 중국 땅임에도 곳곳에 러시아풍 건물들이 보였다. 쑤이펀하 세관에서 출국 심사를 마친 기행단은 국경을 넘어 러시아 땅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탑승하자 300미터 남짓 전방에 러시아 포그라니치니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보였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간단한 입국카드 작성만으로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300미터를 가기 위해 기행단은 버스 안에서 2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서 중국에서 러시아로 입국하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일일이 비자 심사를 받느라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비좁은 버스 안에 중국인 여행객들과 귀국하는 러시아인들까지 꽉 들어찼고 부슬비가 내리며 습도가 높아져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더위가 기행단을 지치게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러시아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과한 기행단은 러시아 현지 안내를 맡기로 한 송지나 교수(여·65)를 만났다. 송 교수는 고려인 3세로 러시아 극동연방대 한국어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기행단은 현지에서 섭외한 전세차량에 탑승해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우수리스크는 포그라니치니로부터 13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은 도로상태가 좋아 러시아 입국 과정에서 지친 기행단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기행단은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현지 식당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한국식에 가까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흰 쌀밥과 함께 쇠고기고추볶음, 김치볶음에 탕수육과 비슷한 음식도 나왔다. 송 교수는 “우수리스크에는 고려인 3~4세들과 중국인들도 다수 거주하고 있다”며 “이들의 영향으로 우수리스크에는 러시아·중국·한국의 음식 문화가 고루 퍼져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떠나 온 지 불과 3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 생각이 간절하던 기행단에게는 가뭄의 단비같은 식사였다.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고려인 문화센터.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3년 건립됐다.
식사를 마친 기행단은 바로 옆의 고려인문화센터로 향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3년 건립됐다. 연해주로의 고려인 이주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고려인의 이주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서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일제에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연해주로 망명하며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된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에 생성된 신한촌은 당시 가장 큰 규모의 한인 거주지역으로 1910년대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된 곳이다.

문화센터 입구에는 연해주로의 고려인 이주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었다.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가자 고려인 이주 초기의 생활모습에 대한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있었다. 전시관 관람경로를 따라 이동하면 고려인의 연해주 이주역사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연해주로의 재이주에 관한 자료를 시간 순으로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문화센터 밖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문화센터 측은 이 기념비에 대해 ‘안중근 의사의 1909년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비
고려인 문화센터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기념비. 안중근 의사의 1909년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수이푼강에는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이상설 선생의 유허지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이후 중국과 연해주를 넘나들며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17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순국했다. 이상설 선생은 순국하기 전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은 모두 불태우고 내 시신도 화장하여 수이푼강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고인의 유언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상설 선생이 사용하던 물건을 모두 불태움에 따라 귀중한 독립운동 역사 자료들 또한 소실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 있는 이상설 선생 유허지.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이상설 선생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순국했다.
기행단은 우수리스크에서 활동한 또 다른 독립운동가였던 최재형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서 ‘全 러시아 한민족 중앙총회’ 명예회장이자 상당한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다. 최재형 선생은 그 재력을 바탕으로 연해주는 물론 간도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920년 4월 최재형 선생의 저택에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쳤고 최재형 선생은 일제에 총살된다.

최재형 선생의 자택은 지난 2011년 한국-러시아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국 정부가 러시아 정부의 양해를 구해 사들였다. 최재형 선생의 자택은 개보수를 거쳐 연해주 독립운동 기념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최재형 선생 자택의 맞은 편에는 ‘全 러시아 한민족 중앙총회’가 결성되었던 학교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해당 건물은 현재에도 학교로 쓰이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저택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자택. 최재형 선생은 상당한 재력가로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수리스크에서의 일정을 마치자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기행단은 자유시(현 스보보드니)로 향하기 위한 출발지인 달레네첸스크로 향했다. 달레네첸스크는 우수리스크에서 320km 떨어진 곳으로 과거 ‘이만’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곳이다. 95년전 헤이룽장성 미산에서 결성된 대한독립군단은 달레네첸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자유시(현 스보보드니)로 이동했다. 컴컴한 어둠속을 5시간여 달린 기행단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달레네첸스크에 도착해 이날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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