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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마지막 4중주,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칼럼]마지막 4중주,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기사승인 2020. 03. 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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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인생을 닮아 있다. 4개의 현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음의 향연은, 아이러니하게도 끊임없이 어긋나는 삶을 노래한다. 총 45분이 넘는 시간동안 쉼 없이 진행하라는 작곡가의 메모 덕에 연주자들은 중간에 현을 조율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긴 곡을 쉬는 시간 없이 연주하다보면 현은 조금씩 풀리기 마련이다. 현에 활대를 댄 초심의 완벽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연주가 진행되면 될수록 4개 악기의 조율은 제각각 틀어지고 화음은 깨질 수밖에 없다. 마침내 협주가 끝났을 땐 예민함으로 지친 연주자들은 어색한 자조의 미소를 띤 채 객석을 응시하게 된다.

위대한 작곡가가 이를 몰랐을 리 없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굳이 그렇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후기작들을 살펴보면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를 열었다는 음악사적 평가가 괜히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심오한 현대음악을 듣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면모를 여지없이 느끼게 한다.

‘인생에 대한 은유’로서 한 편의 완벽한 연주를 완전체에 가깝게 담아낸 영화가 있다. 바로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2012년)이다. 극중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은 화려한 솔로로 데뷔하는 대신, 스승(피터, 첼리스트)과 함께 쿼텟(Quartet)을 결성한다. 비올라 주자로 줄리엣이 캐스팅되고, 그녀를 흠모하는 재능 있는 음악학도 로버트는 작곡가의 꿈을 접고 제 2바이올리니스트로 현악4중주단에 합류하게 된다.

25년이란 오랜 세월을 같이 했음에도 연주를 대하는 마음은 늘 초심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팀에 자신을 맞추는 것엔 늘 회의적이다. 각자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1바이올리니스트인 다니엘은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원칙주의자다. 그런 그가 마뜩치 않은 로버트는 악보를 덮고 자유롭게 연주하길 바란다.

원칙을 지키는 일은 때론 모순된 방식으로 원칙을 깨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악보에 충실해 쉬지 않고 연주하다보면 도중에 느슨해지는 현 때문에 도리어 불협화음이 된다. 이로써 영화는 인생의 어긋남과 불확정성을 표현한다. 극중 원칙주의자 다니엘과 로버트의 딸 알렉산드라의 일탈이 상징하는 바이기도 하다. 반면 로버트는 원칙보다 연주자의 즉흥성과 무대상황에 맞게 이뤄지는 팀의 협업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전체적 조화를 매개하는 제 2바이올리니스트 역할과는 상충하는 태도다.

파킨슨병으로 고통 받던 팀의 조력자 피터는 자신을 대신해 ‘니나’라는 첼리스트를 추천하고 팀을 떠나고자 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 줄리엣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로버트는 하룻밤 일탈로 그녀와 결별하게 되는 실수를 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으로 결핍을 겪었던 줄리엣 역시 딸 알렉산드라에게 같은 상처를 안기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나 마지막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영화 속 피터의 대사처럼 “베토벤은 현악 4중주 14번 일곱 악장을 모두 쉬지 않고 연주하라고 써 두었다. 악기 조율 없이 불협화음으로 끝까지 쉼 없이 연주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바뀐 선거법으로 혼선을 겪고 있는 여러 정당들에게 이 영화를 진지하게 추천하고 싶다. 협주는 계속되어야만 하기에….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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