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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생양 만들기

[칼럼] 희생양 만들기

기사승인 2020. 03.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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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숙명여대 석좌교수. 변호사
후한시대, 승상 조조는 황제를 참칭하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그러나 정작 군사들을 먹일 군량미가 크게 부족해 별 수 없이 일일 급식량을 점차 줄이자 군사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갔다. 조조가 군량담당관 왕후를 부른다. “물건 하나만 빌려주게.” “어떤 물건을 쓰시렵니까?” 조조가 능청스레 대답한다. “자네 목일세.” 조조는 왕후가 군량미를 빼돌렸다는 거짓 죄목을 만들어 그의 목을 벴다. 그러자 군사들은 줄어든 식량을 큰 불평 없이 받아먹었다.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 군사들의 불만을 잠재운 것이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따르면, 공동체의 분노에 직면한 지배세력이 복수할 힘이 없는 약자를 희생시켜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는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중세유럽에서 마녀재판의 희생양이 된 사람은 50여만 명에 이르는데, 그 대부분이 힘없는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희생양이라는 용어는 구약성서에서 유래한다. 옛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에 숫염소 두 마리를 제비 뽑아 한 마리는 죽여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인간의 죄를 뒤집어씌워 산 채로 광야에 내쫓는 속죄제물로 삼았다. 희생양·속죄양이 실은 모두 염소였던 것이다. 이 속죄염소를 ‘아사셀’이라고 부른다. 정치의 세계로 넘어오면, 부패나 무능으로 신뢰를 잃은 오만한 정권이 국민의 분노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내는 허구의 적을 희생양이라고 한다.

정치적 희생양은 대체로 전체주의 권력과 대중의 집단광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신천지교 신자들을 코로나19 사태의 주범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들의 집회와 이동이 감염확산의 주요 통로로 밝혀진 만큼 그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저들에게 바이러스 발생의 책임까지 덮어씌울 수는 없다.

이탈리아의 중국인 밀집거주지역이 있는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감염 사망자가 속출하고,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이란에서 감염이 확산되는 사태를 신천지교와 연결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이러스 발원지는 중국의 가장 큰 바이러스연구소가 있는 우한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객관적인 인식이다.

대한의사협회와 감염협회 등 의료전문기관들은 바이러스 발생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 금지와 중국발 입국자의 격리조치를 줄곧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끝내 묵살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초기의 감염원 차단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우리 국민이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마스크를 중국에 먼저 수백만 장이나 넘겨준 것은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유능한 의료진과 우수한 진료시스템, 방역 일선의 영웅적인 헌신, 국민의 성숙한 자제 등 민간의 역량이 총결집되어 이만큼이나마 버텨오고 있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마울 따름이다.

기독교계는 시한부종말론에 기울어진 신천지교를 이단으로 본다. 크리스천인 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저들이 살인집단은 아닐 것이다. 그네들이 고의로 바이러스를 퍼뜨리거나 조직적으로 방역업무를 방해한 사실이 있다면 그 책임을 끝까지 추궁해야겠지만, 아예 종교집단 자체를 바이러스 소굴로 낙인 찍어 정부의 몫임이 분명한 방역실패 책임까지 몽땅 떠넘기는 것은 비겁한 마녀사냥일 수 있다.

신천지교의 교주를 살인죄로 고소하는 것은 온당한 법률행위라기보다 지나친 정치행각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관동대지진 때 극심한 혼란에 빠진 대중의 분노가 정부를 향하게 되자, 군국주의 일본정권은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거짓소문을 대대적으로 퍼뜨렸고, 그 선동에 놀아난 일본인들은 조선인 수천 명을 무차별 집단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처럼 애꿎은 정치적 희생양을 만드는 전근대적 마녀사냥이 21세기 한국에서 슬며시 고개 들고 있다니, 우리 사회 한 구석에 깊숙이 스며든 전체주의적 집단광기의 징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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