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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산업은행 구조조정 ‘명과 암’…낙하산은 이제 그만

②산업은행 구조조정 ‘명과 암’…낙하산은 이제 그만

기사승인 2020. 04.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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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구조본' 떠오른 산업은행]
외환위기 이후부터 '구조본' 역할
18년전 LG카드 사태 수습 1등 공신
정권교체 때마다 친정부 회장 앉아
산은 자회사 요직도 잇따라 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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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코로나19 여파를 고스란히 맞은 아시아나항공의 ‘구세주’로 산업은행이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산업은행이 국내 기업들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건 IMF 외환위기 이후다.

산업은행은 1954년 설립 이후 중화학공업과 수출산업 등 국내 기간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다. IMF 외환위기로 대우그룹 등 대기업들의 줄도산이 일어나자 기업 구조조정 전면에 나서게 됐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역사에는 성공의 빛과 함께 부정적인 그림자도 짙었다. 산업은행이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 중 LG카드와 STX팬오션 등은 성공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20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했던 대우조선해양이나 해외사업 부실로 매각 문턱을 넘지 못한 대우건설 등은 산업은행 입장에선 아픈 손가락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조기에 정상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추진력 있게 구조조정 전면에 나서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 성향의 인사가 사령탑으로 내려오는 것도 문제다. 역대 산업은행 회장 역시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또 대우건설이나 KDB생명보험 등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진행해온 기업이나 자회사에 산업은행 출신 인사들을 내려 보내 ‘OB’들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해왔다는 지적도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산업은행의 전문성 부족과 모럴해저드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201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더해 117개 기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이들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액만 22조5518억원에 달했다. 작년 말 기준 산업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도 60여 개 수준이다. 현재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 정상화와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에 적극적으로 자금 공급에 나서면서 기업 구조조정본부로서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메카로 자라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직후다. 대기업 부실이 발생하면 금융시장 안정과 산업정책 등을 감안해 금융지원을 해왔다. 기업 자금줄 역할과 구조조정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을 지속 확대해온 셈이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 중 대표적 성공 사례는 LG카드와 STX팬오션 등이다. 2002년 수백만명을 신용불량 상태에 빠뜨렸던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당시 카드사 중 가장 큰 규모였던 LG카드가 도산 위기에 몰렸다. 이에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LG카드 경영정상화를 추진했고, 구조조정과 매각을 진행했다. 산업은행 지원에 힘입어 흑자로 돌아선 LG카드는 2006년 신한은행에 매각됐고, 현재 신한금융에서 은행 다음가는 알짜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LG카드와 함께 하림에 매각된 STX팬오션도 산업은행의 성공한 구조조정으로 꼽힌다. 금융권에서도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이 자금지원을 비롯,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STX팬오션도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하는 등 정상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공 사례만큼 난항을 겪은 구조조정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20년째 주인을 찾지 못한 대우조선해양과 매각 문턱에서 좌절한 대우건설 등이다. 또한 ‘매각 4수생’인 KDB생명도 산업은행 입장에선 어려운 숙제다. 10조원에 이르는 혈세가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분식회계가 발생해 전직 최고경영자와 산업은행 회장들이 사법처리되는 사태도 겪었다. 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경영감시 차원에서 내려 보낸 산업은행 출신 CFO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다.

2018년 호반건설과 대우건설 매각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갑작스런 해외부실이 드러나면서 매각 문턱을 넘지 못했다. KDB생명은 2014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2010년 KDB생명을 인수했는데, 추후 진행한 유상증자까지 더하면 1조원가량을 투입한 셈이다. 현재 매각예상가격은 2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산업은행은 또 친정권 인사로도 비난을 받아왔다. 민유성·강만수·홍기택·이동걸 전 회장 모두 친정권 인사로 분류돼왔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자회사나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OB들을 내려 보냈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한국GM 주요 요직에 대거 산업은행 출신들을 앉혔다. 산업은행은 2016년부터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는 은행 출신을 내려 보내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KDB생명 등 자회사에는 여전히 출신 인사를 요직에 앉히고 있다. KDB생명 임원자리는 산업은행 출신이 빠진 적이 없는 만큼 임원들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위기 기업을 지원하고 산업 전반이 버틸 수 있는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기하면서 부작용을 키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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