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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보의 패거리 의식, 그리고 대선

[칼럼] 진보의 패거리 의식, 그리고 대선

기사승인 2020. 07. 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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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욱 사회부장
양창욱 사회부장
 예정에 없던 재·보궐 선거다. 그것도 9개월 후에 ‘미니 대선’급으로 치러야 한다. 사실 4·15 총선으로 거대 의석을 품은 이 공룡 여당은 차기 대선 때까지 마음 놓고 칼자루를 휘두르며 순항할 줄만 알았다. 좀비정당으로 몰락한 야당이 여전히 쉴 새 없이 똥볼을 차주고 고비 고비 마다 운까지 따라주니 홀연히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때 이른 오만함은 참상(慘狀)을 불렀다. 더불어민주당이 전체의석의 50%만 차지해 야당과 팽팽한 긴장감만 있었더라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 5일장’으로 밀어붙이는 만용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진영의 신앙으로 자리 잡은 ‘우리는 뭘 해도 괜찮아’의 방자함만 없었더라도 피해자에게 연일 악다구니를 세우며 2차 가해를 가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성’과 ‘인권’이 본질인 진보진영이 아무렇지도 않게 토해내고 있는, 이제는 정말 일상이 돼버린 ‘이중잣대’와 ‘내로남불’은 진보진영 특유의 동지애와 패거리 의식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 뿌리 깊고 맹목적인 끼리끼리 텃세와 차별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도 서울 명문대 출신의 운동권 주류에게는 근본도 없는 무엇일 뿐이었다. 늘 ‘대학도 안 나오고 재야에 족보도 없는 지방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그래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정통 운동권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운동권 주류의 ‘노무현 무시’에 종종 분노를 표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조차 저서 ‘운명’에서 중앙 중심의 운동권 문화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진보진영 내부의 각종 논란에 유시민 이사장이 일절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 어떤 가치에도 우선하는 진보진영의 동지애와 패거리 의식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권 지지율의 3대축을 호남과 3~40대, 여성이라고 봤을 때, 작금의 사태로 ‘여성표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참담한 실상 말고도 진보진영이 필요 이상으로 위기의식을 느껴야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대선이 원래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즉 진보의 텃밭인 호남은 보수의 텃밭인 TK(대구·경북)와 유권자 수가 비슷할 뿐이다. TK를 포함하는 영남 전체는 보수의 저수지로 호남의 3배에 달하는 유권자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보가 전국을 누비며 마른걸레 쥐어짜듯이 표를 긁어모아도 저 드넓은 영남 땅을 처음부터 깔고 시작하는 보수를 이기기는 항상 버거운 것이다. 결국 진보는 ‘수도권에서 최대한 표 차이를 벌리고 영남에서 최대한 표 차이를 줄인다’는 ‘진보진영 대선필승 공식’을 만들게 되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PK(부산·경남) 출신 후보를 선호하게 됐다. PK 후보가 나와야 영남 표밭의 35% 이상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자신들이 최종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 출신인 문재인, 노무현 후보는 스스로 저 수치를 갈라서, 김대중 후보는 이인제 후보가 대신 갈라주는 바람에 대통령이 됐다.

현재 우리 정치지형에서 진보진영의 대선후보로 최종 낙점 받으려면 친문(친문재인) 진영과 호남의 지지를 받아야한다. 친문과 호남의 중요한 투표성향 가운데 하나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무조건 지지한다”이고 보면, 대선필승 공식에 따라 PK 출신인 김경수 경남지사나 조국 전 장관이 일단 유리했지만 이들이 ‘법정의 시간’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적어도 친문은, 비록 적자(嫡子)는 아니지만 이낙연 전 총리나 이재명 경기지사와 ‘간보기’를 넘어 동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등장은 정권재창출이 되더라도 동일계파에서 대통령을 두 번 연속 배출한 적이 없다는 ‘한국정치 대권의 법칙’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호남 출신의 이 전 총리가 영남에서 35% 이상을 획득할 수 있음을 어떻게 입증해 보일지, 이제 겨우 족쇄에서 풀려난 이 지사가 과연 무엇으로 친문과 호남의 마음을 얻으며 ‘이낙연 추격전’을 펼칠지 그저 흥미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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