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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마저 친일파 대만 리덩후이 전 총통 공과 엇갈려

영혼마저 친일파 대만 리덩후이 전 총통 공과 엇갈려

기사승인 2020. 07. 3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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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독립 여론 형성에도 기여
영혼마저 친일파로 불리던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로 직계 유족으로는 부인 쩡원후이(曾文惠) 여사와 두 딸이 있다. 슬하에 리셴원(李憲文)이라는 아들도 있었으나 1982년 잃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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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 친일 행적으로 유명한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 2015년 7월에는 일본을 방문, 친일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제공=런민르바오.
런민르바오(人民日報)를 비롯한 중국 언론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전날 오후 7시 24분 입원 중이던 타이베이(臺北)의 롱민(榮民)병원에서 별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월 우유를 잘못 삼키는 바람에 발생한 폐렴 증세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고령 탓에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개인적으로는 온갖 호사를 다 누린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총통의 자리에 있으면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보냈다. 심지어 1996년에는 최초의 직선 총통에 당선되는 영광까지 누리기도 했다. 상당히 장수한 것 역시 호사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않나 보인다.

오랫동안 총통으로 재임했던 만큼 공적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으로 총통 재임 시절 국민당 독재를 종식시키고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한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대만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過)가 그 누구보다 엄청난 정치인이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는 문제적 인물로 손꼽힌다. 우선 노골적인 친일 행적을 보인 사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젊은 시절 일본에 유학, 기모노를 즐겨 입으면서 제국주의를 찬양했다는 행적은 당시 대만이 일본의 점령 하에 있었던 만큼 충분히 이해의 소지가 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총통 퇴임 이후인 2001년부터 작심하고 보인 친일 행보는 지금도 진보적 인사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행적,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覺열도)는 중국이 아닌 일본의 영토이다”라는 발언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베이징의 한국 출신 화교 류바오란(劉寶蘭) 씨가 “그는 대만 내 친일파의 대부로도 불리는 인물로 손색이 없다. 최근 사망한 한국의 악질 친일파 백선엽 같은 인물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고 그를 혹평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보인다.

이외에 그는 국민당 소속으로 총통에 당선됐으면서도 ‘대만 독립’을 주창,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 원죄도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로 인해 그는 총통 퇴임 이후 국민당에서 제명되는 횡액을 당했다. 이후 기다렸다는 듯 대만 독립을 주창하는 민주진보당(민진당)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여 국민당 지지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중국으로부터는 ‘대만 독립’을 광범위하게 유포한 국민당의 한간(漢奸·매국노)이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영욕을 뒤로 한 채 영면하면서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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