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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칼럼] 한국의 ‘룬샷’ 프로젝트가 지구를 강타할 날

[김동철 칼럼] 한국의 ‘룬샷’ 프로젝트가 지구를 강타할 날

기사승인 2021. 03. 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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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베스핀글로벌 고문
물리학자 사피 바칼은 저서 룬샷(Loonshot, 2020)에서 달을 향한 우주선 발사 같은 세간의 관심을 받는 중요 프로젝트인 문샷(moonshot)과 대비해서, 룬샷이란 그 주창자가 나사 빠진 사람으로 무시당하고 홀대당하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래서 룬샷은 아이디어에서 그치고 현실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강한 실행력을 지닌 사람이 추진하면 룬샷은 획기적 역사가 된다.

미국 과학자 버니바 부시는 1945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국가안보, 경제성장과 질병퇴치에 필수적인 기초과학을 민간에만 맡길 수 없다고 썼다. 미국의 국가연구시스템의 틀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는 무선통신을 이용한 레이더 제작기술이 이미 18년 전 개발됐지만 美해군이 무시하는 바람에 사장됐음을 알아냈다. 당시 독일 첨단잠수함 U보트는 연합군 군함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하지만 부시 덕분에 빛을 본 레이더를 탑재한 미군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U보트를 찾아내자 U보트는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했고 결국 전쟁도 끝났다. 레이더가 빨리 제작됐더라면 전쟁의 참상도 줄었을 것이다.

부시가 주도한 ‘과학연구개발국’은 페니실린, 말라리아, 파상풍 연구로 병사들의 감염질병 사망률을 20배나 낮췄다. 원자폭탄 프로젝트도 부시의 룬샷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의 보고서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룬샷에는 GPS, PC, MRI, 심박조율기, 인공심장 그리고 심지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까지 있다. 이 보고서 덕분에 연방정부가 고품질 실리콘 결정을 연구하는 분야에 투자했고 그 결과 전자시대를 개척한 트랜지스터가 탄생했다. 놀라운 혜안과 추진력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기초과학보다 첨단분야에 치중하다 보니 기초과학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분야는 외국의존도가 높다.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반도체 제조공정의 화합물이나 해외제약업체들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그 사례다.

과거의 전쟁은 기존의 무기나 군수장비 확보의 게임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제쳐놓고 수량과 속도만 가지고 전쟁의 승리확률을 계산하였다. 그러나 전쟁을 겪으면서 기술이 급성장했으며 그 기술이 전쟁과 그 이후의 세상도 바꿔놓았다. 신무기가 나오면 전쟁은 일방적으로 끝난다. 임진왜란 때 조총 앞 칼이 얼마나 무력(無力)한지, 또 2차 세계대전 때 핵폭탄이 얼마나 가공(可恐)한지 절감하지 않았는가.

IT의 발달에도 여러 단계의 룬샷이 기여했다. 대형컴퓨터 운영시스템만 존재하던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개인용 윈도우시스템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컴퓨터가 존재하는 룬샷을 이루었고, 1999년에는 다수의 윈도우를 수용하는 가상시스템(VMware)이 등장하였다. 4차 산업혁명기에는 이러한 시스템들을 컨테이너에 올려 실행하는 클라우드 서비스(IaaS: Infrastructure as a Service)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애플리케이션을 담을 그릇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이러한 굵직한 추세에서 유사한 경쟁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은 조급증이 불러온 초라한 플레이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이는 이러한 추세의 혁신 경쟁은 이것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 무명의 아마추어 시절을 10년 이상 견뎌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현을 위해 과학자들은 괴상한 것을 탐구할 기회와 독립성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사상이 부시의 보고서에 담겨있는 국가의 과학 사업이다.

이제는 서류더미 속에 잠자던 보석 같은 아이디어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모조리 찾아내는 세상이 됐다. 비즈니스의 눈과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아이디어들이 필요한 곳으로 이를 옮겨올 방법은 무수하다. 마침 한국은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이 그들의 전략을 시험하는 성숙한 시장이다. 한국 기업이 시작한 룬샷 프로젝트가 지구를 강타하고, 기초과학 노벨상도 한국 과학자가 타고, 세계의 인공지능들이 한국의 기초과학 논문들을 뻔질나게 뒤지는 그런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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