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팬데믹 이후,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칼럼]팬데믹 이후,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기사승인 2021. 03. 28. 10:5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황석 문화평론가
영화는 없어질 것이다. 적어도 현재의 독점적인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벌써 그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팬데믹이 미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세간의 말들은 이미 뒤진 감각이 되어 버렸다. “미래는 이미 와있다. 펼쳐지지 않았을 뿐...”

광고계의 전설이 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2’의 광고는 매력적이다. 광고의 시작은 근미래로 설정돼 있다. 광고 속 앳된 청년은 투명한 공 모양의 캡슐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다가 비틀어 연다. 이내 연기처럼 그 내용물이 청년의 코로 들어간다. 그리고 판타지 게임 속에서 화려한 액션으로 괴수들을 무찌르고 운명적 여인과 조우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바다 괴물로 변해 압도적인 힘으로 그의 목을 조여 온다. 탈출은 불가능한 일.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죽음을 맞이할 차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동료가 그를 구출해 낸다. 청년은 현실로 돌아와 아쉬운 듯 게임을 복기하며 화면을 응시한다.

광고는 ‘플레이스테이션 9 버전’에 대한 가상광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의 미래 버전을 예고한다. 그러고 나서 플레이스테이션 2가 그 시작(the Beginning)이 될 것이라며 마무리된다. 지난 겨울 플레이스테이션 5가 출시됐다. 플레이스테이션 버전 9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만약 광고와 같은 가상 혹은 증강현실이 완벽히 실현되면, 영화는 백 년이 넘게 떨쳐온 위상을 게임에 넘겨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세상이 빨리 오길 고대하지는 않는다. 플레이스테이션 9 버전 가상광고를 보고 있으면, 캡슐을 열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청년이 모습이 마치 마약 투약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환각 증상이 강력한 마약중독과 가상게임 속 체험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이미 게임 속 리얼리티가 현실을 압도해 보이는데, 어떤 게임기술의 진화와 발전이 그리 반가워 보이겠는가.

사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앞서 말한 ‘미래는 이미 와 있다’는 문장은 사이버 펑크 장르의 대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그의 대표작 ‘뉴로맨서’의 세계관은 예의 SF 장르처럼 디스토피아로 설정돼 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신체 기능을 기계로 대체한 인간은 노동 대신 환각에 몰두한다. 해킹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불법이 만연한 세상, 바로 그 세상은 플레이스테이션 2가 그 시작이라고 호기롭게 말한 플레이스테이션 9의 배경이다.

소설에서 구현된 미래세계에도 패권을 장악한 국가는 있다. 바로 일본이다. 소설 ‘뉴로맨서’가 출시된 시점(1984년)은, 일본의 독주를 경계한 미국이 G5 국가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기세를 꺾은 1985년 직전이다. 당시로선 소설의 설정이 당연해 보였으나, 이후 알게 모르게 그 같은 내용이 레이건 행정부의 세계전략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팽 당한 일본은 21세기가 시작할 시점까지도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한 예로 1997년 출시된 소니의 노트북 바이오(VAIO)의 인기는 2000년대 후반까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2014년에는 특정 기종의 발열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대규모 리콜사태가 이뤄졌고, 이후 소니사의 PC사업 부문은 매각됐다. 현재 소니 바이오라는 브랜드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플레이스테이션 9의 시작을 알린 플레이스테이션 2의 출시일은 2000년 3월이었다. 소설 속에서 세계 패권국이 된 일본은 김칫국을 마신 격이 됐다. 현재 일본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자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때마침 선거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투표장으로 가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해 보인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