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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정신승리의 심리학

[이효성 칼럼] 정신승리의 심리학

기사승인 2021. 04. 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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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 자문위원장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주필
‘정신승리’는 본래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했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이 말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대립적이거나 경쟁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불리함이나 열등함을 부정하면서 상대의 유리함이나 우월함을 폄하하고 그를 멸시함으로서 정신적으로 위안이나 만족을 얻는 행위를 뜻한다. 정신승리는 바꿀 수 없는 불리한 현실을 관념으로 극복하는 방법으로 이는 곧 현실을 왜곡한 망상에 의한 승리이며 우월감으로 표출된 열등감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 승리의 대표적인 예는 ‘중화사상’이다. 농경민족인 한족은 이민족 특히 기마전에 능숙한 북방민족들을 두려워했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나라도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야 했다. 진 멸망 후 중국을 다시 통일한 한나라는 대업 1년 후인 기원전 201년 북방의 강자가 된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퇴하여 그들에게 황실 여인과 함께 솜, 비단, 쌀, 술 등 다량의 공물을 바친 조공국이 되는 ‘평성(平城)의 치욕’을 겪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족은 이민족을 한족 공동의 적으로 삼아 물리쳐야 할 오랑캐로 폄하하고, 자기들의 문물과 제도는 지키고 퍼뜨려야 할 우수한 ‘중화’로 치켜세웠다. 모든 문물이 천하의 중심인 중국에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덕이 높은 중국의 천자가 이민족들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중화사상으로 정신승리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민족이 천자가 되어 거꾸로 한족을 다스린 적이 많았다는 점에서 중화사상은 계속 절실했고 결국 그들의 이념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정신승리의 예가 있다. 1623년 명분도 없고 현실에도 반하는 친명배금을 내세워 반정에 성공한 인조 조정은 광해군의 중립외교 대신 후금을 오랑캐라며 배척했으나 그를 뒷받침할 힘은 없었다. 그래서 대륙 정벌에 앞서 배후를 안정시키려던 후금은 자신들과 원만했던 광해군을 내쫓았다며 1627년 조선을 침략하여 형제의 맹약을 강요하고 물러갔다.

이후 후금은 더 강성해져 국명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군신의 관계를 요구했으나 조선이 이를 무시하자 1637년 청 태종 홍타이지가 손수 군대를 이끌고 침략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해 버티다가 결국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치르고 군신의 맹약을 맺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그런 인조 조정이 할 수 있는 것은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고 멸시하며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고 정신승리를 구가하는 것뿐이었다.

중국은 1839년 아편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서구 열강에 나라가 찢기는 ‘백년국치(百年國恥)’를 당했다. 그 탓인지 개혁개방으로 국력이 좀 커지자 각종 역사 공정을 통해 남의 역사도 자기의 역사로 편입하고, 과거의 강역을 과도하게 확대하여 지도까지 왜곡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이제는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남의 문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드는 문화 공정으로 정신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중화사상에서 파생한 만물중국기원설에 따라 모든 것이 중국에서 기원했기에 좋은 것은 다 중국 것이라며 망상적인 우월감을 구가하는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경제적·정치적 쇠락을 겪고 있다. 그 때문에 부쩍 우익화한 일본은 암울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여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한다. 예컨대 위안부의 매춘부화, 난징 학살의 부인, 혐한론 및 혐중론과 같은 피해자 나무라기,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해방론과 같은 견강부회 등등. 일본은 자신은 우월하고 고상하나 너희는 열등하고 저속하다는 망상에 의한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그것은 암울한 현실을 관념으로 극복하는 정신승리일 뿐이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정신승리는 시기심이나 열등감의 발로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초한 왜곡된 사실의 국제적 전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 정부, 학계, 언론은 유기적으로 세계에 진실을 알리는 적극적인 작업을 꾸준하게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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