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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함께 백신파티…‘접종센터’에서 일하는 베를린 최고의 ‘대중문화가들’

DJ와 함께 백신파티…‘접종센터’에서 일하는 베를린 최고의 ‘대중문화가들’

기사승인 2021. 05. 0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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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테겔 공항의 백신센터/사진=서주령 통신원
독일 베를린의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센터에서 한 여성이 방금 접종을 마친 노인을 부축해 나와 택시로 안내한다. 노인은 미소를 담아 “정말 즐거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후 떠나갔다.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녀는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배우이자 댄서인 율리아 티체(Julia Titze)다. 다양한 장르의 대중예술로 역량을 인정받은 그녀가 백신접종센터에서 노인들을 안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공영방송 ARD는 최근 DJ와 파티·전기 기획자, 대중 문화 공연가등 수백 명의 베를린 소재 대중문화 종사자 약 800명을 고용한 베를린 백신접종센터를 소개했다.

처음 접종 홍보와 백신센터에서 필요한 인력을 베를린에 거점을 둔 대중문화 종사자에게서 충당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베를린 적십자사였다.

옌스 크바데 적십자 베를린 지역 대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주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비상시국을 맞은 접종센터에서도 그 기지를 발휘할 것”이라며 고용과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하는 베를린 백신접종센터관리를 DJ에이전트에 위임했다.

옌스 대표는 “이번 협업은 봉쇄령으로 인해 실업 위기에 처한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대피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접종센터에는 그들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 백신 접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타인을 잘 이해하고 이끌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특별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으며 그동안 베를린에서 대규모 파티 문화를 정립해 온 대중문화 종사자들 중 다수가 바로 그 유형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새로운 임시 직업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DJ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베를린 클럽에서 ‘테크노 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는 유명 DJ 하이토 굅프리히(Haito Goepfrich)는 백신접종 캠페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접종센터에서 만난 대기자들 중 많은 수가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냉전시대부터 최근 코로나 시기 동안 겪은 슬프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줬다”고 경험을 소개했다. 하이토는 일을 시작한 첫 날부터 매일 저녁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번 경험이 언젠가 자신의 창작활동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1990년대 베를린에 정착해 DJ에이전트를 설립한 마르쿠스 니슈는 한 때 대형 파티장에서 8000명 규모의 파티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DJ하이토와 마찬가지로 접종센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작업을 분배하는 동시에 동선을 정리하며 백신접종 일정을 짜는 사무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클럽 파티’와 ‘백신 파티’ 두 가지 모두 기획하고 일을 처리과정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손님의 나이가 훨씬 더 많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세계적인 뮤지션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콘서트 투어를 돌았던 베를린의 공연기획가 파울 칼크브레너(Paul Kalkbrenner)는 지난 12월부터 베를린 테겔 지구의 코로나 백신접종센터장을 맡았으며 자신만의 독립적인 팀을 꾸려 운영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인기 DJ그룹 재즈노바(Jazzanova)의 알렉스 바르크(Alex Barck)가 이 센터 운영팀에 합류하면서 독일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베를린의 클럽 문화는 독일의 예술과 문화를 주도하는 큰 축으로 인정받으며 하나의 독립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수준 높은 DJ들과 대중문화가들이 그들만의 특색있는 파티를 기획하며 그들만의 화려한 관광 및 컨벤션 사업을 구축해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베를린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든 청년과 예술가들이 버려진 창고와 건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해 개조한 후 자유로운 분위기의 즉흥 파티 장소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지난 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베를린의 클럽을 비롯한 주요 대중문화는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 지원과 일부 클럽 애호가들의 연이은 기부로 초기 파산은 막았으나 경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대처방안이 없는 한 하나의 문화 장르였던 클럽과 대중문화 사업에도 파산물결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베를린 문화사업계는 ‘문화 노동자’들이 이번 적십자사의 제안으로 본거지를 잃은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한 베를린 문화계의 복구 시기 또한 예상보다 훨씬 더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신접종센터에서 제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유명 DJ나 기획자, 예술가뿐 아니라 클럽 문을 지키는 경비원과 바텐더 등 넓은 개념의 파티 서비스업 종사자들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자아내는 ‘특별한 분위기’는 접종 센터를 방문하는 노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접종을 마치고 나온 한 노인은 ARD와의 인터뷰에서 “안내하는 직원들이 공감을 잘하고 친절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들보다 더 좋은 직원들은 없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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