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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놈들’

[취재후일담]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놈들’

기사승인 2021. 10.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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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력본부 홍보자료 사진
‘한수원 본사놈들이 시켜서 찍은 신입사원 브이로그’라는 제목의 한국수력원자력 공식 홍보영상./사진=한수원 한강수력본부 홈페이지 갈무리
‘놈’.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공식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존중과 격식이 없는 말이다. 10여 년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부터는 종종 풍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었고, 최근에는 ‘브이로그(비디오+블로그)’ 같은 동영상 콘텐츠가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사용빈도와 그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생각이 유연해 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놈’이라는 말은 사용하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상대를 비하하는 말로 인식될 수 있어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함은 변함이 없다.

올해 초 한국수력원자력 한강수력본부 공식 홈페이지에 홍보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모든 이의 눈을 확 사로잡을 만한 ‘한수원 본사 놈들이 시켜서 찍은 신입사원 브이로그’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내용은 평범하다. 2년차 사원이 직접 발전 시설 현황과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내용이 전부다. 이 영상의 제목을 놓고 “빵 터졌다”는 댓글이 달렸지만, 공기업에서 공식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제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상은 업로드 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홍보센터 홍보자료 페이지 가장 위에 걸려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이 나왔을까. 한수원과 같은 대형 공기업은 일반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사무직 직원과 현장 중심의 지사 직원으로 크게 나뉜다. 한수원의 경우 경주 본사를 제외하면 흔히 ‘격오지’로 통하는 곳에 있는 5개 원자력발전소들과 8개 수력·양수 발전소에 대부분 근무하게 된다. 순환 보직 체계가 있지만 지사에서 근무하는 현장직 직원과 본사에서 경영·기획 등을 담당하는 직원간에 이질감이 형성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최근 ‘격오’ 근무지 배정을 둘러싸고 노사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내부적으로 기피 사업소로 통하던 한울원자력본부 근무 대상 선정에 사측이 마일리지를 기반으로 한 순환보직제도 적용을 강행 했고 노측은 “기피 지역 근무를 사측이 강제하고 있다”며 반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수원은 원자력과 수력이라는 특수한 발전 매개를 운영하는 특성으로 인해 현장 근무자와 사무직, 본사 직원과 지역 직원 간 불협화음 가능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이런 현장 근무자들의 내부 분위기가 공식 브이로그에 ‘본사 놈들’이라는 제목으로 투영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브이로그는 외부 용역을 통해 제작했고 제목도 업체와 함께 선정했다. 현장 업무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촬영한 수력본부 입장에서 제목을 뽑다 보니 이 같은 제목이 나왔다”는 것이 한강수력본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내부적으로 검토했고, 재미를 주기 위해 결정한 만큼 문제도 없다는 의미다.

한강수력본부의 말처럼 재미있는 컨텐츠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본사와 현장 근무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괴리감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재미만으로 이런 제목을 선택했는지는 곱씹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1만2000여 한수원 직원들 간의 보이지 않은 감정적 간극을 조금씩 넓히는 요인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재미로 공식 홍보용 영상을 보는 ‘본사 놈들’은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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