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인생 2막'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은 한국기업식 거버넌스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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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HJ비즈니스빌딩에서 기자와 만나 이 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변호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인생 2막’을 연 흥미로운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변호사 출신 펀드매니저의 눈에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는 최대주주, 일부 주요 주주의 이익 사수에 집중돼있었다. 김 회장은 싱가포르의 한 헤지펀드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 중이지만 양국을 오가며 주주보호 장치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연말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2대 회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의 화려한 상장 뒤에 숨겨진 LG화학 주주들의 손실을 지적해왔다. 실제로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100만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반토막났다. 2차전지 배터리라는 알짜사업을 잃은 LG화학은 빈 껍데기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LG화학이 지난 20년간 육성한 2차전지 사업의 미래 가능성을 봤던 장기투자자들은 물적분할 후 동시상장이라는 악재에 좌절했다. 물적분할은 인적분할과 달리 기존 회사 주주들은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데다, 상장까지 할 경우 모 회사의 기업가치를 깎아먹기 때문이다. 반면 모회사의 대주주는 직접적인 자금 투입 없이 신설 자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었다면 LG화학 이사들은 주주를 배신한 대가로 집단소송을 당하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절망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기업들의 물적분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등 여야 주요 후보 4명이 최근 상장사가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별도 상장하는 것에 대해 소액 주주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회장은 선진국들의 주주보호 제도적 장치로 ‘합·의·물·자·자·수·집·증’을 꼽는다. ‘합’은 합병비율을 공정가격으로 정하지 않는 점, ‘의’는 의무공개 매수제도에서 대주주 지분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는 점, ‘물’은 물적분할 동시상장으로 기존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 ‘자’는 자진상폐 매수가격을 시가로 정하는 점, ‘자’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하지 않고 최대주주 경영권 방어에 쓰는 점, ‘수’는 이사회가 수탁자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점, ‘집’은 한국 주주들의 집단소송 사유가 극히 제한적인 점, ‘증’은 소송시 주주들이 요구하는 모든 증거를 기업이 공개해야 하는 증거 개시제도의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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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에서 강력한 주주보호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원인이 기업 거버넌스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주주보호장치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며 “주식을 산다는 것은 회사·이사회와 주주간의 신뢰가 형성돼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사회가 주기적으로 곶감 빼먹듯 주주이익을 침탈하는데 어떻게 한국 기업들을 높게 평가하겠느냐”고 했다.
이사회가 회사와 일부 주주들을 위해서만 일한다면, 최대주주인 연기금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국내의 수많은 ‘연기금’이 있는데 기업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정기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겠다는 제안을 해야한다”고 했다. 이사회가 창업자의 후손을 위한 가신 집단이 돼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주주보호장치 도입이 선진국 도약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가 열렸다”며 “테슬라가 공격적인 증설을 할 수 있는 이유도 풍부한 자금 조달 능력 덕분”이라고 했다. 미국이 제도적으로 주주를 엄격하게 보호하자, 전세계의 자본이 모여들었다는 의미다. 그는 또 “현대차는 테슬라의 시가총액의 10분의 1수준이다. 테슬라와 현대차의 시가총액 차이는 조달할 수 있는 자본의 격차로 이어진다”며 “앞으로는 선도형 기업에 자본이 쏠리고 그 기업이 재투자해 경쟁력을 키워 앞서가는 구조가 굳어질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