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단명은 옛말…'롱런'하는 이유
② '지·용·덕'…그들만의 '특색
③ 증시 불황 맞설 경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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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아시아투데이가 국내 증권사 22개사(지난해 말 기준·자본금 1000억원 이상)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명의 최고경영자 가운데 연임으로 임기 6년 이상을 보장 받은 사람은 9명(오너 제외)이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의 임기가 18년으로 가장 길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미래에셋증권 대표직을 수행하다 2012년 미래에셋생명 대표를 맡았다. 이후 2016년부터 다시 미래에셋증권을 이끌고 있다. 최 회장이 잠시 다른 계열사 대표로 갔던 점을 고려하면, ‘최장수 CEO’는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이다. 2010년부터 2025년까지 무려 15년 간(4연임) 대표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 고원종 DB금융투자(13년), 김신 SK증권 사장(10년)이 뒤를 잇는다. 정영채 NH투자증권·장석훈 삼성증권·권희백 한화투자증권·김원규 이베스트투자증권 사장의 임기는 각각 6년이다. 향후 장수 CEO에 이름을 올릴 후보로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4년), 박정림·김성현 KB증권 각자 대표이사 사장(각 4년)이 꼽힌다. 정 사장은 1년 단위로 연임해 벌써 3번 임기를 연장했다. 박정림·김성현 사장도 지난해 말 두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 평사원에서 CEO로…전문 영역 개척
이들 모두 평범한 회사원에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아 대표 자리에 올랐다. 대개 증권 붐이 한창이던 1980년대 업계에 발을 들였다. 최현만 회장은 1989년 한신증권을 거쳐 1997년 미래에셋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샐러리맨에서 금융투자회사 회장이 된 첫 사례다. 이현 다우키움그룹 부회장은 1987년 은행에서 증권사로 직장을 옮겨 2000년 키움(당시 키움닷컴증권)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그는 금융산업에서 조연이던 정보기술(IT)이 주연이 될 거라 확신했다. 2018년부터 키움증권 대표를 맡았고, 지난해 12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미국 금융중심지인 월가 출신의 최희문 부회장은 1987년 기업금융 애널리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고원종 사장 역시 1985년 동양투자금융에 입사한 뒤 외국계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당시 고 사장은 대우그룹의 위기를 경고한 보고서로 주목을 받았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IB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대우증권 입사 후 2005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B 사업부 담당 임원을 13년간 역임했다.
장석훈 사장과 권희백 사장은 각각 ‘정통 삼성·한화맨’이다.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에서 대표를 지낸 김원규 사장은 ‘영업통’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김신 사장은 채권 브로커 1세대로 통한다.
◇ 수익 다각화로 재임 기간 실적 ‘쑥’
장수 CEO들은 재임 기간 남다른 실적 성장세를 보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장수 CEO들의 지난해 말 당기순이익 합계는 취임 첫해 말 대비 약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증시가 호황을 보인 가운데 호실적의 비결로는 리스크 관리와 대형 기업공개, 해외 투자를 비롯한 수익 다각화 등이 꼽힌다.
‘실적왕’은 최현만 회장이다. 2016년 말 당기순이익은 157억원에서 5년 만에 75.4배 불어났다. 경영 전략이 적중한 데다 대우증권 인수합병(2016년) 효과가 순익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4855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최초로 2년 연속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섰다.
최희문 부회장은 매년 실적 경신을 이어가며 ‘최희문 매직’이란 말을 낳았다. 11년 전 255억원에 불과하던 당기순이익은 30.7배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50억원에서 63배 늘었다. 이현 부회장(4.7배), 김원규 사장(3.1배), 장석훈 사장(2.9배) 등도 회사 수익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 “전문성·신속한 의사결정 중요”
한 증권사는 최근 내부 문건을 통해 ‘최근 CEO 장기 재임 트렌드’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IB 부문 성장 대응 전문성 △급속한 트렌드 변화 속 전문성에 기반한 신속한 의사결정 역량이다. 2017년 초대형 IB 등장 이후 증권사들의 사업구조가 브로커리지(위탁매매)에서 IB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수 CEO들의 면면을 보면 IB 역량이 돋보인다. ‘구조화 금융의 달인’으로 불리는 최 부회장, ‘IB 대부’로 통하는 정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코로나19 이후 디지털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시장 변화를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장수 CEO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거나 가상자산 등 새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장수 CEO의 필수조건으로 조직원과의 소통 능력, 명확한 비전 제시와 실행 등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다만 일각에선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격언처럼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 조직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EO의 임기를 장기간 보장해 지속 가능한 경영을 가능토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자리 보전을 위한 성과 올리기에 치중하지 않도록 조직 문화 혁신과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