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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기고] 시진핑과 옌안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기고] 시진핑과 옌안

기사승인 2022. 10. 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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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 현장 방문 답사기
지난 8월부터 베이징대학 방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이 31일 본보에 중국 혁명의 성지인 산시(陝西)성 옌안(延安) 방문기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본보는 권 회장의 기고를 거의 원문 그대로 싣도록 했습니다. 내용은 본보의 보도 방침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편집자 주).

4년만에 다시 찾은 산시성 옌안은 더 발전한 모습이었다. 중국에서 시베이(西北)라 불리는 산시성 황토고원에 위치한, 200만명 주민이 사는 작은 도시이지만 중국 혁명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시이기에 이곳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느 대도시 못지 않다. 필자가 묵고 있는 옌안호텔만 해도 한국의 5성급 호텔 보다 나은 수준이다. 이런 호텔들이 이 작은 도시에 여러 곳이 있다. 한해 수백만명이 찾는 이른바 '홍색(紅色)관광'의 대표 도시다운 관광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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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옌안 소재의 마오쩌둥 구거를 찾아 포즈를 취한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제공=한중도시우호협회.
필자는 지난 29일 3박4일 일정으로 베이징대 국제방문학자들과 함께 옌안을 방문했다. 정확히 4년전인 지난 2018년 10월 27일 중국 파트너인 중국국제우호연락회 친구들과 방문한 이후 두번째 방문인 셈이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판웨이(潘緯) 교수도 동행했다. 판 교수는 필자에게 자신도 옌안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국인들도 옌안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1935년 대장정의 최종 종착지로 옌안을 정한 이유도 이곳이 오지 중의 오지인 탓에 국민당 군대와 일본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외진 혁명 역사 도시에 지난 27일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방문했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당 제 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리창(李强) 등 6명의 상무위원들을 대동하고서였다.

시 주석은 이날 "자력갱생, 고군분투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옌안정신'은 당의 소중한 정신적 재산이다. 대대손손 계승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 7년 동안 옌안에서 살고 일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애정이 깊다. 나의 아버지도 여기에서 일했다. 그래서 이곳에 친숙하다. 7년 동안 '지청(知靑·지식 청년)'으로서 옌안의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 살았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제7차 당 대회 장소와 혁명 사적지들을 둘러봤다."고 소회를 밝혔다. 옌안과 자신의 운명적 관계를 밝힌 것이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은 1913년 산시성 푸핑(富平)현에서 출생해 옌안을 포함한 서북 일대에서 홍군(紅軍)을 이끌던 지도자였다. 시 주석 역시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 '하방(下放)'을 당해 14살때 부터 7년간 이곳 옌안의 빈촌인 량자허(梁家河)에서 기층 민중의 삶을 체험했다. 시 주석 부자와 옌안은 '물과 물고기' 처럼 불가분의 관계인 동시에 옌안은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잉태된 곳이기도 하다.

5년전 제19차 당 대회 직후에는 저장(浙江)성과 상하이(上海)시 소재의 공산당 유적지를 찾았던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하자 마자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주 많다. 의미 역시 적지 않다.

우선 시진핑 주석과 시진핑 사상으로 중화민족의 부흥과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중국 인민과 세계에 밝혔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옌안이 마오쩌둥의 리더십과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해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것과 마찬가지로 미중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고난과 승리'라는 옌안식 투쟁정신을 강조해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미중 전략경쟁은 피할 수 없는 상수(常數)가 됐다. 중국은 미국과 서방의 다양한 연합공세에 대응하면서도 내수경제 발전과 공동부유를 이뤄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자력갱생과 고군분투'라는 옌안의 역사 유전자를 지금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계와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도국가가 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옌안은 1935년부터 1948년까지 13년 동안 중국 공산당의 본부인 동시에 국제공산주의자와 진보 지식인들의 해방구였다. 일제 식민지 조선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노르웨이, 영국,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연대했던 곳이다.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써서 마오쩌둥과 홍군, 옌안을 세계에 알렸던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Edgar Parks Snow) 부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36년 미국 언론인 최초로 옌안을 방문해 4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마오쩌둥을 포함한 홍군 지도자와 일반 병사들을 인터뷰했다. 그를 통해 미지의 존재였던 마오쩌둥과 옌안이 세계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수많은 국제 활동가들이 모여들 수 있었다. 중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광주 출신의 작곡가 정율성(鄭律成)이 '연안송'을 작곡한 곳도 이곳 옌안이다.

시 주석의 옌안 방문은 중국이 여전히 대장정(大長征)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불어 시 주석이 이끄는 '21세기 신대장정(新大長征)'은 마오쩌둥이 이끌던 20세기 대장정처럼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 행보였다.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향한 시진핑의 중국몽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옌안은 아직도 혁명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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