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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델 모나코가 연출한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

[손수연의 오페라산책]델 모나코가 연출한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

기사승인 2023. 06. 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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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의 주관과 해석, 그리고 원작과의 관계 다시 생각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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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이번 제1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폐막작은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였다. 작곡가 베르디의 탄생 210주년을 기념해 올해 국립오페라단에서는 4편의 베르디 작품을 준비했고 그 중 세 편이 신작이다. '일 트로바토레'도 새 프로덕션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오페라는 잔카를로 델 모나코라는 거장이 연출과 무대, 의상까지 맡았다. 델 모나코는 지난해 국내 초연된 오페라 '아틸라'의 연출을 맡아 마티에르(재질감 또는 양감)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무대를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작품은 원작을 새롭게 재해석해 선보였다. 무대는 멀리 브룩클린 브리지가 보이는 뉴욕의 일명 덤보 지역을 연상케 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는 연출가가 루나 백작과 만리코를 갱단의 우두머리라는 설정으로 바꿨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오페라의 배경을 미국의 한 도시, 디스토피아적 공간으로 바꿨다. 그리고 루나 백작은 백인 갱단, 만리코는 다인종 무리인 라티노스 갱 집단의 리더로 무대에 세웠다. 그 가운데 여주인공인 레오노라에게 부여된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오페라를 본 이후의 소감을 말하자면, 그런 것들은 막상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무대 장치나 의상, 조명 등 시각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출연 성악가들을 통해서는 연출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구현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거대한 빌딩 3개가 복합적으로 활용된 무대는 웅장하고, 소품 하나하나가 섬세했지만 갱단의 의상을 걸친 인물이 그것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출자는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예로 들었지만 작품의 외피가 아닌 내적 측면에 있어서 이 같은 설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되지 않았다.

성악가들은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노래하며,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여줬다. 다만, 연출가의 생각이 성악가에게도 잘 전달된 것인지, 작품 해석에 대한 소통이 제대로 이뤄졌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강한 개성을 가진 4명의 등장인물은 구티에레즈의 원작과 대본가인 캄마라노가 만들어놓은 서사구조 안에서만 움직일 뿐 이번 프로덕션의 연출가가 구성한 세계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는 의미다. 게다가 잦은 무대 전환으로 인한 공연 중 대기는 작품 감상의 맥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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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이날 오페라는 오히려 성악가들의 노래와 음악에 의지해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고 본다. 만리코 역할의 테너 이범주, 루나 백작을 맡은 바리톤 강주원, 레오노라를 노래한 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산니코바 모두 각자 역할에 충실한 좋은 가창을 들려주었다. 이범주는 청아한 발성이 돋보이는 테너로, 기대를 모았던 아리아 '저 타는 불꽃을 보라(Di quella pira)'도 무난하게 소화했고 에카테리나 산니코바는 레오노라 배역에 요구되는 온화함 보다는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리릭 소프라노였으나 적절한 강약조절을 바탕으로 두 개의 주요 아리아를 호소력 있게 노래했다.

베르디는 원래 이 작품을 두 명의 여성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체나를 맡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는 이날 베르디의 이러한 바람을 가장 잘 살린 출연자가 아닐까 한다. 카르멘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메조소프라노가 주역인 오페라가 그리 자주 공연되지 않기에 성악가로서 양송미의 능력이 조역 등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이날 무대에서 양송미는 메조소프라노서의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칸조네 '불꽃은 타오르고(Stride la vampa)'에서 들려준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폭발적인 가창, 여유로운 호흡과 감정의 조절, 객석의 몰입을 이끌어낸 연기력까지,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가진 양면성을 폭넓게 그려냈다. 또한 양송미의 아주체나는 다소 맥락 없었던 이날 무대에서 흔들림 없는 발성과 노래, 확실한 감정의 표현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고, 인물들이 서 있는 무대의 배경, 관계에 대해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레오나르도 시니가 지휘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위너오페라합창단도 긴장감 있는 연주로 무대를 잘 뒷받침했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는 현대 오페라에서 연출자의 주관과 해석, 그리고 원작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 공연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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