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용 회장 법정으로<YONHAP NO-2119> | 0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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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옭아 맨 사법리스크 최종 향배가 내년 1월 26일 선고로 정해진다. 모든 사건이 얽힌 8년간의 복잡한 합법 여부와 각종 절차 문제를 떠나 리더로서 내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단은 어떤 경영 성과를 가져왔을까. 중심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1등 CMO(의약품위탁생산) 기업이 됐고 환난의 시기, 국가 백신안보에까지 기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법원에 발이 묶인 지금도, 우리나라 전체 수출 20%를 상회하던 반도체 산업의 추락과 차기 스마트폰 시장 주도권 싸움, 새롭게 재편되는 배터리 공급망 확보까지, 향후 우리 경제를 뒤흔들 결단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사법리스크 와중에도 이 회장은 부산국제엑스포 유치와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외교 지원을 위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출장길에 오르는 등 사회적 책무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최원영·정문경 기자 = "삼성물산 주주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오는 7월 17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 합병을 통해 바이오 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엘리엇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미래가 방해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로 갖고 있던 제일모직간 합병을 결정하는 이사회를 코 앞에 둔 2015년 여름, 삼성물산이 대대적으로 신문에 낸 광고다.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이 주주들을 부추기면서 표대결이 이뤄지던 터라, 애 타는 내부 상황이 공개적 주주서한에 여과 없이 담겼다.
8년후인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이 사건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배구조를 투명화, 단순화하라는 사회 전반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최후진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재계에선 결과적으로 모두가 잘 되는 그림이었음이 합병 이후 성적표를 통해 확인됐다고 평가한다.
◇ 삼성물산 자회사 '삼바'… 이제 韓 바이오산업 미래 이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은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가 대검찰청에 외감법 위반 등 혐의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고발한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다. 이 회장을 옭아맨 삼성 사법리스크의 시작인 셈이다.
당시 엘리엇 등은 삼성물산과 합병하려는 제일모직의 가치가 크게 고평가 됐다면서 합병을 반대한 바 있다. 정말 고평가였을까. 합병 후 8년, 지난 3분기 삼성물산의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2조2432억원으로, 이 중 건설부문은 8991억원, 상사부문은 3030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부문은 7448억원으로 나타났다.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바'가 삼성물산 실적을 이끄는 메인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몸집으로만 따지면 이미 삼성물산 연결기준 총 62조4840억원의 자산 총액 중 25.6%인 16조원이 바이오부문에서 나온다. 17.9% 비중의 건설과 8% 수준의 상사를 합한 것보다 크다.
삼바 시가총액은 상장 당일인 2016년 11월10일 기준 9조5277억원에서 이날 기준 51조2453억원으로 5배 이상 커졌다. 팬데믹이 활개치던 2021년 8월엔 66조9589억원까지 불었다. 영업이익은 올해 처음으로 1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생산규모 기준 글로벌 의약품 CMO 1위 기업 타이틀을 거머 쥐었다. 3분기 증권가에선 "삼성물산의 실적을 건설과 바이오부문이 이끈다"고 했고 가치 평가에 있어서도 "삼바의 자산가치를 눈여겨 봐야한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 이재용 회장 법정으로<YONHAP NO-2118> | 0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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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불러 온 팬데믹은 삼바의 '검증된 실력'을 제약업계에 어필하며 고속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 이재용 회장이 직접 화이자 최고위 경영진과의 협상 '가교' 역할을 하면서 백신 50만명분이 조기에 도입돼 팬데믹 극복에 큰 힘이 된 바 있다. 이 회장은 또 '모더나' 공동 설립자를 만나 삼성과 모더나 간 코로나19 백신 공조를 약속하고 실제 공동생산까지 성사시켰다. 삼바는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뒤 생산기술 이전 기간을 3개월로 단축했고 짧은 기간에 높은 수율을 달성하며 안정적인 백신 생산을 조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초기 백신 개발사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바이오시밀러 회사들과 진작 손 잡았다면 백신공급에 있어 초기 발생한 문제들은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 거란 지적이 터져나왔다. 이는 곧 CMO 1위 삼바의 수주 돌풍을 예고하는 의미로 업계는 해석했다. 그렇게 매년 삼바의 조단위 수주행렬이 이어졌다.
콜옵션 이슈가 제기 됐던 삼바와 글로벌의약사 바이오젠과의 합작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삼바가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자금난을 겪던 바이오젠으로부터 그간 각종 상권 노하우를 챙긴 삼성은 약 2조7700억원에 지분을 전량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시기적으로 잘 파고들어 거의 염가에 인수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의 결정에 대한 법적인 문제와 별개로, 결국 바이오가 삼성물산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 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팬데믹 시기, 국가 안전에 기여한 공을 떠나서라도 세계 1등 산업을 또 한번 만들어 국가의 위상을 떨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 Plant+4 (1) | 0 |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삼성바이오로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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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라면 경영권 지키는데 죽을 힘 다해야… 아니라면 배임"
IMF 이후 글로벌 행동주의펀드들은 국내 대기업들의 취약해진 기업 지배구조를 파고 들었다. 특히 2003년 소버린이 SK를 뒤흔든 사태는 모든 국내 기업인들의 경각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소버린으로부터 SK를 지켜내는데 조단위를 뛰어넘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경영권 방어에 힘 쓰느라 소모적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투자해야 할 골든타임에 적정 투자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얘기다.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를 쥐고 흔든 엘리엇의 공격에 삼성은 지금껏 홍역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엘리엇은 이후 2017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현대모비스를 집중적으로 매집했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려던 정의선 회장을 막아섰다. 기회를 놓친 현대차그룹은 지금껏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사회가 국내 대기업의 투명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했지만 외국계기업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5조800억원, 현대모비스에 2조5000억원의 배당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나서며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서야 방어가 가능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지난 17일 공판에서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 부회장 최후진술을 통해 당시의 위기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최 전 실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엘리엇이라는 헤지펀드의 개입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며 "해외투기 자본을 저지하지 못하면 저희 삼성 뿐만 아니라 국내 전 기업이 먹이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고 전했다. 최 전실장은 또 "당시 합병을 추진한 임직원은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노력했다"고도 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사장도 "엘리엇 대응과정에서 회사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려고 했지만 법을 어기거나 시장 주주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혹시라도 제가 잘못했다면 그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모든 정치권과 사회에선 재계의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불투명한 지배구조에만 신경 썼지 이를 지키기 위한 애로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경제·사회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송덕진 극동미래연구소장은 "기본적으로 경영자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건 배임일 수 밖에 없다"면서 "이재용 회장이기 때문에 이 사회는 승계 문제로 봤지만, 어떤 경영자라도 생존이 달린 문제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송 소장은 "당시 삼성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전략과 추진이 옳은거냐 묻는다면 경영학적 관점에선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