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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연극이라는 예술 형식은 때때로 세계를 감각하는 또 다른 창이 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문제, 다가오지 않는 현실을 무대 위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낯설고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7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기후 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를 '감각의 회복'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하며, 익숙한 정보 전달이 아닌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안하는 시도다.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2024년 제8회 모자이크 페스티벌을 통해 초연된 바 있으며, 이번 무대는 그로부터 1년 만의 재연이다. 포스트드라마 및 다큐멘터리 연극을 지향하는 창작 집단 프로젝트 BB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도약지원'과 서울시 '서울형 창작극장'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모크-다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을 기반으로 한다. 'mock(흉내 내다, 가장하다)'와 'documentary(다큐멘터리)'의 합성어인 이 형식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허구의 서사를 담고 있으며, 연극에서는 비교적 드물게 시도되는 실험적 접근이다. 프로젝트 BB는 실제 뉴스 기사, 유튜브 콘텐츠, 환경 서적, 인터뷰 등 다각적인 리서치를 바탕으로 수집한 정보들을 극 속으로 유입시키되, 여기에 합리적 허구성을 더해 현실과 허구, 배우와 캐릭터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형식은 관객에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단순한 전달이 아닌 감각의 층위에서 체험하게 만든다. 정보의 객관적 제시보다는 감정과 상상의 개입을 통해, 익숙함에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사고의 지형을 흔드는 방식이다. 연극이 현실을 다루되, 전적으로 현실에 종속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모크-다큐멘터리는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 03 | 0 |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 연습 현장. / 사진 프로젝트 B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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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kaoTalk_20250803_201533647_01 | 0 |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 연습 현장. / 사진 프로젝트 B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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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세 개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빙하 위 북극곰 세 남매, 플라스틱 오염으로 상처 입은 수족관 가족, 그리고 친환경 연극 제작을 고민하는 연습실 속 배우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각기 다른 시공간의 세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 인간과 비인간의 감각을 넘나들며 관객을 기후 위기의 체험으로 이끈다. 특히 향유고래의 모스부호처럼 들리는 소리 '뜨. 뜨뜨. 뜨뜨뜨.'를 따라가다 보면, 연극은 생태적 공명이라는 테마를 다층적으로 직조해낸다.
배우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지만, 점차 북극곰, 물고기,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인물로 전환하며 연기한다. 이 경계 넘기는 단순한 역할의 변화를 넘어, 감각과 존재의 지점을 확장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연극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기후 위기를 감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미래에 전할 수 있는 소리는 무엇인가?"
이번 재연에는 초연에 출연했던 김벼리, 박소영 배우가 다시 무대에 오르며, 최정헌, 오경주, 김예별, 최유현이 새롭게 합류했다. 연극 '환상동화', 영화 '변산'과 '박열'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해온 최정헌과, 연극 '버닝필드', 뮤지컬 '폴'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오경주가 일곰/토우지 역을 맡는다. 이곰/아야 역에는 '아란의 욕조', '아마데우스'의 김벼리와 '흑백다방 1991', '보도지침'의 김예별이 출연하며, 빵곰/하나미 역은 '어나더컨트리'의 최유현, '신데렐라'와 '청년 박모씨의 실패 스키마 대처법'의 박소영이 함께한다. 특히 최유현 배우는 277대 1의 공개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돼 이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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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kaoTalk_20250803_201533647_02 | 0 |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 연습 현장. / 사진 프로젝트 B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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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대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형식적 확장과 미학적 심화를 예고한다. 초연이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문제의식에 방점을 뒀다면, 이번 무대는 감각적 층위와 상징의 폭을 넓힌다. 무대디자인 이승희, 조명디자인 정채림, 음악 양주성, 움직임 류정아, 의상디자인 민지영 등 새롭게 합류한 제작진은 파편화된 시각 언어와 시공간의 전환을 통해 무대의 밀도를 한층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 외에도 드라마터그 김기란, 조연출 배유나, 무대감독 박채은, 조명 오퍼레이터 최윤서, 기획PD 최지유, 홍보PD 소수빈, 홍보디자인 김민영 등 전 제작진이 참여한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고서빈은 연극 'X들의 번지점프', '물수제비 잘하는 법', '청년 박모씨의 실패 스키마 대처법' 등에서 동시대 사회의 균열과 감각을 탐색해온 창작자다. 프로듀서이자 배우로 함께하는 박소영은 기획과 무대 위 실연을 넘나들며 프로젝트 BB의 실험성과 정체성을 현실화한다. 'Break the Boundary'라는 뜻을 담은 프로젝트 BB는 기존 연극 문법을 깨고, 사회적 감각과 실험정신을 접목한 연극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극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11일간의 일정으로 관객과 만난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유영하는 배우들, 단편적인 이미지와 감각의 결로 엮인 무대, 그리고 예술이 사회를 감각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묻는다.
그것은 거창한 결론도, 완성된 해답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무대 위에 놓인 질문들은, 무뎌진 감각을 흔들고, 잊고 있던 연결의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 감각의 여운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조용히,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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