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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원본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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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9. 09. 10:45

'핫'한 MZ 작가 옥승철 개인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해체
롯데뮤지엄서 10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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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 전경. /롯데뮤지엄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클로즈업 장면을 재조합해 디지털 툴과 아날로그 회화를 결합하는 옥승철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자극하며, 감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얼굴을 통해 관람자가 직접 해석하게끔 유도하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옥승철의 작업은 디지털 원본이 캔버스 회화, 조각, 영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디지털 시대의 원본과 복제 개념을 전복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2년 아트선재센터 전시에서는 '옥승철 오픈런'이라 불릴 만큼 에디션이 빠르게 매진되며 품절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국제 아트페어 무대에서 입지도 확고하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 첫 출품을 비롯해 뉴욕, 런던, 홍콩 등 주요 경매 시장에서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을 인정받으며 키아프(KIAF)와 아트부산 같은 굵직한 페어에서도 작품이 완판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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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 전경. /롯데뮤지엄
이처럼 '핫'(hot)한 MZ세대 아티스트 옥승철의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자리잡은 롯데뮤지엄에 들어서면 마치 SF영화 속 우주선 내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크로마키 초록색 조명이 긴 십자 복도를 감싸고, 관람객들은 이 공간을 통해 디지털 세계로 '로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예술 작품의 '무거움' 사이의 모순"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스마트폰에서 무한복제되는 이미지와 미술관에 걸린 유일한 회화 작품 사이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대인의 디지털 이미지 소비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의 혁신적인 부분은 공간 구성이다. 십자 복도를 중심으로 '프로토타입-1, 2, 3' 세 섹션이 있지만, 관람객은 어느 섹션부터 시작해도 된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선택하듯 원하는 순서대로 관람할 수 있고, 각 섹션을 마치면 녹색 복도로 돌아와 '로딩'을 거쳐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03. Installation views of the exhibition OKSEUNGCHEOL- PROTOTYPE, LOTTE Museum of Art, Seoul  Photo_ Lim Jang Hwal. Courtesy of LOTTE Museum of Art, Seoul
옥승철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 전경. /롯데뮤지엄
'프로토타입-1' 섹션의 높이 2.8m 거대 조각상 'Prototype' 시리즈는 전시의 '기본값'을 보여준다. 이후 전시장의 모든 작품들이 이 얼굴을 템플릿으로 무수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Canon' 시리즈는 '줄리앙'이라는 실존 인물의 흉상에서 시작해 대리석, 석고상, 회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연 무엇이 원본일까? 이는 SNS에서 필터와 보정을 거친 수많은 사진들 중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묻는 것과 같다.

'프로토타입-3'에서는 반복으로 감각이 둔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신작 'Tylenol'은 약물 내성처럼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현대인의 감각을, 'Taste of green tea'는 같은 이미지라도 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짐을 보여준다.

2-2. Mimic, 2021, Acrylic on canvas, 140 X 170 cm. 사진 제공_롯데뮤지엄
옥승철의 'Mimic'. /롯데뮤지엄
작가는 전시명 '프로토타입'을 기존의 '시제품' 개념이 아닌 "언제든 불러와서 변형할 수 있는 유동적인 데이터베이스"로 재정의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통찰이다. 우리는 이제 완성된 하나의 '원본'을 소유하지 않는다. 대신 언제든 불러오고, 수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버전'들 속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사진 앱에서 같은 사진도 필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옥승철의 '프로토타입'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직면한 실존적 고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철학적 실험이다. 원본과 복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답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1-3. Canon, 2024, Oil on canvas, 150 X 150 cm. 사진 제공_롯데뮤지엄 (2)
옥승철의 'Canon'. /롯데뮤지엄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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