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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의 도쿄 시선] 새 얼굴 아이코 공주가 여는 일본의 ‘소프트 파워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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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4. 17:50

송원서 교수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독자 여러분들에게 세계 각지의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아시아투데이는 그 일환으로 오늘부터 일본 슈메이대학교 송원서 교수의 칼럼을 격주로 싣습니다. "송원서의 도쿄 시선"이라는 명칭 아래 실리는 송 교수의 칼럼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일본에 오래 머물다 보면, 황실이 지닌 무게감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도 마사코 황후의 삶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붙잡아 왔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던 외교관이 어느 날 갑자기 황실이라는 엄격한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했을 때, 그녀가 겪었을 심리적 충격은 외국인인 나조차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사코 황후는 국제적 감각과 탁월한 역량을 지녔지만, '조용한 황실 생활'이라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외동딸만 있다는 이유로 후계 문제의 사회적 논란 중심에 서야 했고, 이는 그녀에게 큰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많은 이들이 그 무게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특히 나루히토 천황의 동생인 후미히토 친왕의 아들 히사히토 왕자가 태어난 이후, 황실의 후계 방향이 다시 남(男)계로 기울면서 마사코 황후의 감정은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황실에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마사코 황후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의 부상이다. 아이코 공주는 이번 라오스 방문을 통해 생애 첫 해외 공식 외교 활동에 나섰고, 이는 일본 황실 외교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이 방문은 의미가 크다. 일본은 메콩 지역을 오랫동안 전략적 거점으로 간주해 왔고, 라오스는 인프라, 교육, 개발협력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다. 아이코 공주가 첫 공식 방문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것은 일본이 이 지역 전략을 황실 차원에서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진정 주목할 점은 일본 외교의 '결'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그간 일본 외교는 중장년 남성 관료 중심으로 전문성과 안정성을 갖췄지만, 다소 경직된 이미지가 있었다. 반면 아이코 공주의 라오스 방문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인간적인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행보는 현지 국민들에게 자연스러운 친밀감과 신뢰를 남겼고, 이는 정치적 수사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소프트 파워'의 힘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사회 전반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일본에는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등장했고, 동시에 아이코 공주가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일본 외교는 이제 정책 중심의 딱딱한 외교를 넘어서, 여성 리더십이 지닌 감성, 섬세함, 포용력 등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일본 외교의 미래에 대해 조용한 기대를 품는다.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외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성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외교. 국가 이미지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이 변화의 신호탄은 바로 아이코 공주의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변화는 마사코 황후 개인에게도 깊은 치유가 될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 펼치지 못했던 자신의 가능성을 딸이 이어간다는 것. 모녀의 시간 속에 잠시 멈춰 있던 어떤 흐름이, 이제 세대의 시간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한 인상을 준다.

지금 일본 외교는 '부드러움 속의 힘'을 향해 조용히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코 공주라는 새로운 세대의 상징이 자리하고 있다.

송원서 교수는…
2002년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해 쓰쿠바대학교에서 지구환경과학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슈메이대학교 교수(전임강사)이자 와세다대학교 강사로 지리학을 가르치며 한일 이해 증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 독자들과 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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