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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총기 난사, 父子 테러범에 16명 사망…‘반유대주의’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빚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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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12. 15. 09:09

Australia Shooting <YONHAP NO-3576> (AP)
15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파빌리온 앞에 마련된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한 시민이 헌화된 꽃 위에 이스라엘 국기를 올려두고 있다. 전날 이곳에서 열린 유대교 명절 '하누카' 행사 중 발생한 무차별 총격 테러로 아동을 포함해 최소 16명이 숨졌다.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번 사건을 유대인을 겨냥한 '반유대주의 테러'로 규정했다/AP 연합뉴스
호주의 상징적인 휴양지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발생한 유대교 축제 '하누카' 총기 난사 사건의 사망자가 16명으로 늘어났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 것으로 밝혀지며 충격을 더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강력 범죄를 넘어 호주 사회 내부에 곪아있던 반유대주의 갈등과 국제 정세가 맞물린 최악의 증오 테러로 비화했다는 분석이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에 따르면 전날 저녁 본다이 비치 인근 하누카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10세 아동과 87세 노인을 포함해 최소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42명에 달하는데 이 중 다수가 위독해 희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희생자 중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부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충격적인 사실은 범인들의 정체다. 경찰은 현장에서 사살된 50세 남성과 체포된 24세 남성이 '부자(父子) 관계'라고 공식 확인했다. 이들은 검은 옷을 맞춰 입고 육교 위에서 축제를 즐기던 가족 단위 인파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경찰은 "아버지의 은신처에서 총기 6정이 추가로 발견됐다"며 이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공모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장에서는 심지어 사제 폭발물(IED) 2개도 발견돼 자칫 더 큰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번 사건은 1996년 35명이 사망한 포트 아서 학살 이후 호주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참사다. 호주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 규제법을 도입해 '총기 청정국'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번에 50세 용의자가 무려 6정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있었음에도 '즉각적 위협'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호주의 치안 시스템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크리스 민스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총리는 "총기법 개정이 거의 확실하다"며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의 근본 원인으로 호주 내 급증한 반유대주의를 지목한다. 텔아비브 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사건이 소폭 감소한 것과 달리, 호주에서는 1713건이 발생하며 이탈리아와 함께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시드니와 멜버른 등 대도시에서는 유대인 학교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를 겨냥한 방화와 낙서 테러가 빈번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란 배후설을 제기하며 이란과 단교까지 단행했지만, 사회 전반에 퍼진 유대인 혐오 정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호주 유대인 집행이사회는 "정부가 말로만 규탄할 뿐 실질적인 보호 조치에는 소극적이었다"며 "유대인들이 호주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묻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번 사건은 호주와 이스라엘 간의 심각한 외교적 갈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건 직후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성명을 내고 앨버니지 호주 총리를 정면 겨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당신의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반유대주의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며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게 보상을 주고 유대인 혐오자들을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로 호주 정부는 지난 8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네타냐후는 "호주 거리를 활보하는 유대인 혐오를 방치한 결과가 오늘의 참사"라며 호주 정부의 '정책적 실패'가 테러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이번 사건을 "호주의 심장을 찌른 순수 악이자 반유대주의 테러"로 규정하고 국가적 단합을 호소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호주 사회는 큰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휴양지에서, 가장 즐거워야 할 축제의 날에, 이웃이라 믿었던 이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은 호주 사회의 신뢰 자본을 무너뜨렸다. 당장 이스라엘과의 외교적 마찰을 수습하고, 내부의 인종·종교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호주 정부의 과제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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