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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옥새’ 표현 유감

[칼럼] ‘옥새’ 표현 유감

기사승인 2016. 03. 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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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누리당 공천파동의 결정판은 소위 "옥새 파동"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공천하기로 결정한 일부 '진박' 후보들에 대해 공천과정의 비민주성을 문제 삼아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는 것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결국 친박계와 타협을 통해 공천에서 탈락해 탈당한 유승민, 이재오 의원 지역에 무공천을 얻어냈다. 비록 실리는 챙겼지만 타격도 입었다. 몽니를 부려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친박과 비박간 갈등의 골을 더 팠다. 겉보기에 갈등이 봉합된 듯한 모양새로 총선을 치르지만 총선 후 어떤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야당이 더민주당과 국민의 당으로 분열되면서, 여당은 총선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형세가 전개되었다. 

여당 지도부는 총선 승리보다는 자파 세력 확장에 골몰했다. 총선 후 새누리당 역학구도가 향후 대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선지 자파 세력 확장을 위해 공천과정에 빚어진 이전투구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각종 무리수와 무례한 말들이 오갔고 마침내 "대표 직인 파동"까지 겪었다. 이제 여당도 여러 계파가 함께 가기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 직인 파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우선 비유이겠지만 "옥새"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린다. 전근대 절대 군주국가의 황제의 도장이 옥새다. 옥새는 신격화되던 황제가 가진 권위를 상징한다. 그래서 어떤 서류에 옥새가 찍혔는지 여부가 그 서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작성됐는지, 그 내용이 합리적인지와 같은 기준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절대 군주국가에서라면 당연히 군주의 의사가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며, 옥새는 군주의 의사임을 표시해주는 증표가 아닌가.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국가가 그 권력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를 기대하는 한편, 국가가 그 권력으로 자칫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국가 권력에 대한 '건강한 의구심'이 중요하다고 본다. 삼권분립과 같은 제도도 그런 의구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 대표의 직인을 '옥새'에 비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더구나 대통령도 아닌 여당 대표의 직인을 왜 "옥새"에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기준으로 보면, 과거 군주시대에는 군주에게,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는 국민에게 있다. "옥새" 표현을 억지로 쓰자면 "국민 옥새"가 있을 뿐이다.


공자가 정명(正名)을 주장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말이 올바르지 못하면 백성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고 했다. 공자는 특히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정명(正名)은 바로 그런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전제조건이다. 언어의 사용은 우리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언어의 사용이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비록 비유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볼 게 아니라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대표의 직인 파동은 그 내용에 있어서, 그리고 그런 파동을 표현하는 비유에 있어서, 자유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국민에게는 당혹스런 것이었다. 우선 당내 공천과정에 관한 규정이 얼마나 미비했기에 막판까지 직인파동을 불러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과 경제난에 처해서 정치권이 이런 위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갑론을박하기는커녕 자파세력의 확장에만 혈안인 데 대해 국민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실망은 여당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야 모두에서 드러난 공천 과정의 파행 때문인지 4·13 총선에서 투표율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벌써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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