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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동북부 비하르(Bihar)주 정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에서 1975년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가 독재정치에 반대한 자이 프라카쉬 나라얀(Jay Prakash Narayan)을 구속한 것과 관련, “자유 인도에서 인디라 간디가 부친 자와할랄 네루(Jawaharla Nehru)와 함께 인도의 자유를 위해 싸운 70대(나라얀)를 그렇게 취급한 것은 마하트마 간디가 1917년 영국의 압제에 맞서 전개한 운동(비하르주 참파란 농민운동)에 대한 탑압보다도 심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에 국민회의당(INC·콩그레스)은 니티쉬 쿠마르(Nitish Kumar) 주총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면서 “인디라 간디는 매우 신망 높은 지도자였고, 비하르 주민들은 지금도 그가 (1977년 불가촉천민에 대한 잔혹행위가 일어난) 벨치(Belchi) 마을 투쟁과 (1971년) 빈곤퇴치 운동을 통해 압정에 시달리는 주민의 권리 향상에 힘쓴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콩그레스는 비하르주 집권당인 자나타 달(Janata Dal·United)과 라쉬트리야(Rashtriya)JD(RJD)와 함께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나라얀은 독립운동가이며 인도 독립 후 사회운동가·정치가로 변신했다. 1970년대 중반 인디라 간디 총리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가 구속됐다. 그의 구속은 여당의 선거부정 혐의, 힌두 민족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와 과격 회교단체 자마트-이-이슬라미(Jamat-i-islami)의 활동금지 등과 맞불려 1977년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홈페이지는 “그는 인디라 간디와 아들 산자이(Sanjai) 간디의 독재에 대해 확고하고 완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인디라 간디는 그의 반대에 대한 국민의 동조를 두려워해 1975년 6월 26일 긴급조치를 선포하기 전날 밤 그를 체포해 델리 인근의 티하르(Tihar) 감옥에 구금했다”고 했다.
콩그레스는 최근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당의 근간인 네루 가문에 대한 비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달 28일에는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 기관지가 네루 초대 총리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논평기사와 소냐(Sonia) 간디 총재의 부친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 소속이었다는 기사를 게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