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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최 회장 형제가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는 동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인이 된 큰어머니를 조문했고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도 시간차를 두고 빈소를 찾았다.
이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외부인사 중 가장 먼저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서현 삼성물산 패셔부문사장과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스사업 총괄 사장 부부가 함께 방문했고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허기호 한일시멘트 부회장,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등도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M&M 전 대표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조대식 SK 사장,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 홍지호 SK케미칼 전 부회장, 조정남 SK텔레콤 전 부회장 등 SK그룹 관계인사들도 조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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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고 교하 노씨 규수로 1949년 4월 22세에 수성 최씨 장손이었던 두 살 연상의 최종건 창업회장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한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했고 최종건 회장은 동생 최종현 회장, 아버지 최학배 공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당시 노 여사는 맏며느리로서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다. 그해 9월 서울이 수복된 후 집으로 돌아온 최종건 회장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향했다. 부모 곁을 모처럼 멀리 떠나온 최 회장 부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 등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노 여사는 서울 창고에 사두었던 인견사(인조섬유)는 어떻게 됐겠느냐는 얘기를 꺼냈다. 최 회장은 곧바로 서울 창신동에 있는 창고를 들렀다. 천만다행으로 폐허 속에서도 인견사 열한 고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노 여사의 한 마디로 되찾은 이 열한 고리의 인견사가 바로 오늘날 SK그룹을 있게 한 종자돈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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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 외에도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손수 식사를 챙겼다. 이러한 내조가 있었기에 최종건 회장은 기업 활동에만 전념하며 선경직물 공장을 점차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SK그룹 측은 전했다.
노 여사는 보살계까지 받은 신실한 불교신도다. 대기업 회장 부인이지만 호강을 누려볼 기회도 없이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노 여사는 불심으로 일가친척의 화목을 이뤄냈다.
고인의 법명은 정법행(正法行)이다. 남편 최종건 회장의 병세가 악화돼 요양하고 있을 때 부처님의 대자대비로 쾌유될 것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최 회장이 1973년 폐암으로 별세한 후에는 줄곧 불공을 드리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결혼 24년 만에 최 회장과 사별하고 2000년에는 큰아들 최윤원 회장을 후두암으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한 노 여사는 2002년 둘째 아들 최신원 회장과 함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인 ‘선경최종건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해 후학 양성과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지난해 11월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서 열린 노 여사의 88세 미수연(米壽宴)에서 최신원·창원 형제를 비롯한 직계 가족과 사촌간인 최태원 회장, SK그룹 전·현직 사장·임원 등 400여 명이 모여 화합의 장을 가진 바 있다. 당시 몸이 불편한 노 여사는 동영상 메시지로 “신원·태원·재원·창원아, 딸들아, 형제간에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잘 살아라”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발인은 31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서울 서대문구 광림선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