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부터 중국 프로 축구 슈퍼리그에서 활약 중인 옌볜(延邊) 팀에는 그동안 숱한 감독이 있었다. 또 감독 이상의 사랑을 받던 축구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부터 2년 동안 팀을 맡았던 고 최은택 감독은 그 이상이었다. 거의 신과 같은 존경을 받았다. 그가 거의 20여 년 전 팀을 떠나 귀국하던 날 옌볜공항이 마비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부 팬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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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당시 최은택 감독을 응원하는 옌볜 축구 팬들. 지금도 이들은 최 감독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제공=옌볜르바오(延邊日報).
그가 이런 대접을 받은 데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가 아마도 가장 먼저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요인들도 적지 않았다. 우선 그는 진정으로 옌볜 축구를 아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하겠으나 보수도 받지 않았다. 교수 출신의 교육자답게 선수들을 애정으로 가르쳤다.
그는 일화도 많이 남겼다. 우선 선수들이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게 했다. 당시 아오둥(傲東)이라는 이름을 달고 뛴 선수들은 하나 같이 술 담배를 다 했다. 그러니 경기 후반에는 체력이 뒷받침할 수가 없었다. 역전승이 많기는 했어도 역전패도 적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결국 채찍을 들었다. 우선 모든 선수들에게 술, 담배를 끊게 했다. 이어 선수단을 끌고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이때 한국 팀과 많은 시합을 했다. 선수들은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프로가 어때야 한다는 것에 바로 눈을 떴다. 또 후배 감독들이 자신들의 감독을 깍듯하게 예유하는 것을 보고는 저절로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선수들은 달라졌다. 술, 담배를 다 끊고 최 감독이 이끄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리그 상위원에 랭크되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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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 현지의 축구인들과도 흉허물 없이 지낸 최은택 감독(가운데). 지금도 옌볜 축구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최 감독은 이외에도 팬들을 무척이나 아꼈다. 특히 어린 팬들에게는 마치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스스럼 없이 대했다. 그가 감독이 아닌 선생님, 옌볜 축구의 대부 등으로 불린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야말로 최은택 신드롬이 따로 없었다. 당시 베이징의 언론들까지 대륙의 오지인 옌볜에서 부는 최 감독 신드롬에 주목했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요즘 중국 슈퍼리그에서는 바로 이 옌볜 팀이 15년 만에 복귀, 펄펄 날고 있다. 아직 리그 초반이나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푸더(富德)로 이름이 바뀐 이 팀을 이끄는 이가 바로 박태하(48) 감독이다. 이임생 코치와 하태균과 윤빛가람, 김승대 등의 선수도 그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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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의 박태하 감독. 제2의 최은택 감독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
지금 이 팀의 성적은 사실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재정 환경이 황사 머니를 주머니의 용돈 쓰듯 하는 다른 팀과 다르다는 사실만 봐도 무엇보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적은 당연히 박 감독의 뛰어난 선수 조련이나 용병술과 관계가 밀접하다. 팬들의 환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 외에서도 선수와 팬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에게서 최은택 전 감독의 향기가 난다고도 한다. 지도력, 인품, 능력 등이 마치 판박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옌볜 푸더가 올해 처음 슈퍼리그에 복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